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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안 되는 일이 어딨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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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과연 노 대통령이 일러준 청탁의 거절 노하우는 이후 3년간 얼마나 효과를 냈을까.

참여정부 출범 직후로 다시 가 보자. 대통령 친.인척들이 많이 거주하는 김해는 청와대의 집중적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 내용은 이랬다. 정권 초 대통령의 한 친척집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막아도 막아도 동네 사람들까지 동원해 손을 잡고 찾아왔다고 한다. 시골 정서를 감안할 때 문전박대도 어려웠다.

대통령의 그 친척은 안 만나려고 아예 집을 비웠다. 돌아오니 누가 갖다 놓고 간지도 모를 양주가 한 병 있었다. "누가 놓고 갔느냐"고 물었다. "양복 입은 중년 남자가 왔다 갔다"고만 했다. 명함도 없었다. 다음날 옆집에 잔치가 있었다. 양주는 그 집에 쓰라고 보내졌다. 그날 밤 난리가 났다. 양주에서 돈이 나왔다고 옆집 사람이 들고 왔다. 동네가 웅성거렸다. 당장 청와대가 조사에 나섰다. 양주병의 주인을 알아내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강도 높은 재발 방지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그렇게 의지하던 이해찬 총리가 골프 파문에 휘청거리고 있다. 단순히 3.1절 골프를 했다는 이유만은 아니라고 한다. 특정인이 청탁을 하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느 정권에서나 청탁은 있다. 청탁은 정권의 '실세'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몰린다. 실제 실세들은 청탁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매 정권마다 터져나온 이런저런 게이트가 증거다.

참여정부가 한두 해 지나면서 사회는 많이 맑아졌다. 시중에서, 기업인들 사이에서 "도대체 이 정권 실세는 누구냐", "어디다 얘기해야 되는 거냐"는 넋두리가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노 대통령과 2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 온 한 여권 인사는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대통령이 누구에게도 청탁을 들어줄 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3년 전 노 대통령의 처방은 절반의 성공에 머물고 있다. 청탁에도 수요와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청탁에 익숙한 세상은 다른 출구를 찾고 있다. "그 사람이 안 되면 저 사람은…"하는 식이다. 이 총리의 추락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시중에 화제가 되는 한 TV방송의 개그 코너가 있다. 직업 없는 백수가 살아가는 방법을 그린 코너다. 중국집에 전화해 '일구야, 자장면 한 그릇 단무지 빼고 1000원에 안 되겠니'라는 식이다. 백수는 결국 1000원에 자장면을 배달시킨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친다. "대한민국에 안 되는 일이 어딨니?" 씁쓸한 뒷맛이 남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안 되는 일도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은 언제쯤일까.

이수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