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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위기 벗어나니 병풍처럼 펼쳐진 로체 능선이 …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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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호 23면

[내가 짜는 힐링여행]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 <하>

세락 지대를 통과해 해발 5845m의 암푸랍차라 정상을 향하는 모습.

세락 지대를 통과해 해발 5845m의 암푸랍차라 정상을 향하는 모습.

얼굴 위에 떨어지는 차가운 눈 조각에 놀라 눈을 떠 보니 끔찍한 밤을 보낸 우리에게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동반자들을 흔들어 깨워도 밤새 웅크리고 앉아 추위에 떠느라 웅크린 몸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모두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그렇게 히말라야의 여신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해가 떠오르며 신들이 깎아 놓은 듯한 설산 봉우리들이 하나 둘 빛나기 시작한다. 최악의 밤을 보낸 뒤 마주한 히말라야의 영봉들을 접하니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마구 솟구친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진으로도 담아내기 어려운 은빛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추위와 갈증에 시달리던 끝에 #다른 팀이 남겨 놓은 식량 발견 #닷새 만에 사람 사는 마을 도착 #이후론 야크 떼와 한가로운 걸음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낭만적이지 않았다. 모두들 셰르파니 콜 베이스캠프를 떠나온 후 서른 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물통의 물은 모두 얼었고 남아 있는 약간의 행동식도 입이 말라 먹을 수 없었다. 해가 뜨고 보니 우리가 머문 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관이었다. 아래는 크레바스가 있는 가파른 낭떠러지고, 위쪽에는 쪼개진 바위들이 얼음에 매달려 있어 지난밤을 어떻게 무사히 보냈는지 아찔했다. 지금 신혼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더욱 기가 막혔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바룬체 베이스캠프를 향해 출발했다. 몸에 기운이 다 빠진 상태로 지난밤 헤매던 발자국을 따라 걷다가 눈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울고 싶은데 뺨 맞는 격이랄까, 빙하 한가운데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산소가 평지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6000m 고지대에서는 울음 소리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극심한 갈증에 더욱 지쳐만 갔다. 사방이 눈이지만 함부로 먹었다가는 바이러스에 의해 복통을 앓을 수 있어 그림의 떡이었다. 먼저 출발한 일행들의 발자국을 따라 하얀 설원 위를 걷고 또 걸었다.

어제 가이드는 웨스트 콜 기슭에서 바룬체 베이스캠프까지 한 시간이면 간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세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아직도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지난밤 웨스트 콜로 되돌아가지 않고 베이스캠프를 찾아 헤맸다면, 모두 추위와 탈진으로 이곳에서 떼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숙영지에 도착하자 가이드 쭈레는 기절하다시피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포터들은 다들 말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는지 모두들 아무 말 없이 텐트를 쳤다.

다음날 암푸랍차 라 베이스캠프(5400m)에 도착했다. 하루 더 걸어 암푸랍차 라의 거대한 세락(serac, 빙하의 갈라진 틈에 생긴 얼음 탑)을 넘어 추쿵(4730m)까지 가야 사람이 사는 마을이 나온다. 쭈레와 나는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누군가 데포(depot, 등산 길에 임시로 장비나 식량 등을 보관하는 것)해 놓은 식량을 발견했다. 이곳에 머물렀던 다른 팀이 우리처럼 배고픈 팀을 위해 두고 간 것이었다. 파스타와 밀가루를 들고는 복권에 당첨된 것 마냥 기뻐했다. 잠시 후 숙영지 아래의 호수 너머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다른 팀이 보였다. 함께 로프 설치 작업을 하면 암푸랍차 라를 훨씬 수월하게 넘을 수 있다.

오전 4시,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베이스캠프 뒤쪽의 가파른 너덜 길을 올라 세락을 통과하면 암푸랍차 라가 나온다. 고도가 6000m 가까이 되는 데다 정상 아래는 세락,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는 낙석이 많아 위험한 고개 중 하나다. 빙하에 의해 날카롭게 깎인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숨을 고르다 보니 붉은 태양은 히말라야의 은빛 봉우리와 깊은 설원을 물들이고, 발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푸르고 싱싱한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암푸랍차 라 아래 청빙을 두른 세락의 위용은 가까이 갈수록 놀랍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너덜 길, 세락 통과해 6000m 고개 넘어

웨스트콜 기슭에서 비박을 하다가 동상에 걸린 포터를 치료하고 있다.

웨스트콜 기슭에서 비박을 하다가 동상에 걸린 포터를 치료하고 있다.

암푸랍차 라 정상(5845m)에 다다르니 붉은 태양 아래 검게 그을린 쭈레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다. 스태프들은 강추위 속에서도 곧 힘겨웠던 트레킹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연방 웃음과 감탄사를 내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요 며칠 그들의 얼굴에서 볼 수 없었던 밝은 표정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북쪽으로는 로체(8516m)에서 로체샤르(8383m)를 거쳐 사르체(7502m)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능선 너머로 이번 트레킹의 목적지인 에베레스트(8848m)의 모습도 살짝 드러난다.

암푸랍차 라에서 내리꽂히듯 가파른 내리막을 곤두박질치듯 내려오니 선발대로 출발했던 요리사 마카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영 닷새 만에 사람이 사는 마을인 추쿵에 도착한 것이다. 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이제 우린 살았어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덥석 나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눈물이 당황스러웠지만 곧 나도 그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길고 위험했던 트레킹을 따라나선 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자신의 마을 사람들까지 데리고 와 함께 길을 나섰건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험난했던 지난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마카르는 위험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나보다도 더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25년간 히말라야에서 요리사 생활을 하며 온갖 궂은 상황을 다 겪으며 지금까지 일해 온 그에게도 분명 이번 여정은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믿고 지지해 줬다. 그간의 마음 고생을 눈물로 쏟아내는 마카르와 부둥켜 안은 채 한참을 울고 나서야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길이 아름다운 건 함께한 인연이 있기 때문

암푸랍차 라 베이스캠프에 데포한 식량을 찾고 있다.

암푸랍차 라 베이스캠프에 데포한 식량을 찾고 있다.

에베레스트 지역으로 들어서니 더 이상 길은 험하지 않았다. 저 멀리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걷는 계곡 옆 능선 길은 야크 떼와 함께했다. 야크들은 제 몸집만 한 짐을 가득 지고도 힘든 기색 없이 기품 있는 걸음으로 사람들 곁을 지나쳤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던 포터들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지나온 길에 대해 얘기하며 무용담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휘둥그레한 눈에 입을 쩍 벌린 사람들을 뒤로하고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옮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렇게 기나긴 여정은 끝이 났고, 헤어짐만이 남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몰라보리만큼 살이 빠지고, 얼굴은 안쓰럽게 그을렸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 준 가이드 쭈레, 내게 아빠 같은 존재였던 요리사 마카르,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모습을 잃지 않던 포터 띠르떼, 여섯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가장 노릇을 하는 키친보이 람, 그렇게 내 동료이자 친구이며, 때로는 아버지이자 인생의 스승으로 함께 했던 고마운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암푸랍차 라를 오르는 포터들.

암푸랍차 라를 오르는 포터들.

지난번에 이들과 트레킹을 한 후 헤어짐이 아쉬워 참 많이 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울지 않기로 했다. 흔히 헤어질 때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인연이 있기에 이번에도 함께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다. 그저 40일간의 고된 여정을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너무나도 아쉽지만 이제 우리도, 그들도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네팔 동부의 칸첸중가부터 마칼루를 거쳐 에베레스트 지역까지 장엄한 히말라야의 연봉을 돌아 걷는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 첫 구간. 내게 그 길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그 길 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후 한국행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문 아래로 네팔의 산하가 내려다보인다. 저 산 어디쯤에서 열심히 집을 향하고 있을 스태프들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옆자리의 남편에게 “다음 여행은 히말라야 횡단 2구간이 어때”라고 물었다. 그는 “비스타리(천천히), 비스타리(천천히)”라며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이번 여정이 너무 힘들어 히말라야를 은퇴하겠다던 그는 히말라야 트레킹 전 구간을 나와 함께하고 있다.

문승영 오지여행가
아이디 ‘설악아씨’로 잘 알려진 38세의 오지 여행가. 2014년부터 칸첸중가에서 마칼루·로체·에베레스트·마나슬루·안나푸르나 등을 거쳐 힐사에 이르는 1700㎞ 길이의 네팔 그레이트히말라야트레일(GHT) 하이 루트를 횡단하고 있다. 이번 여행기에는 GHT 동부 칸첸중가~에베레스트 구간을 담았다. 현재 히말라야에서 마지막 구간에 도전하고 있다. 무사히 성공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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