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로에 선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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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실패한 정권도전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고있는 야당은 야당다운 야당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의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실로 17년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정권교체의 호기를 두 김씨의 분열로 놓쳐버린 야당은 통합노력을 벌이는 등 소생의 몸부림을 치고있지만 아직 전도를 낙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계 일각에서는 임박해 있는 이번 총선의 결과에 따라 자칫하면 장기간 야당부재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암울한 전망을 하기까지 한다.
야당이 이처럼 최악의 상태에 빠진 것은 대통령선거 참패와 그 이후 야당이 보여준 지리멸렬한 모습 때문이다.
야권은 대통령선거 실패직후 스스로의 살길을 찾는 무성한 논의와 몸부림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참패」의 원인을 야권내부에서 찾기보다 정권쪽의 선거부정과 행정·관권·금권 등 물리력 행사쪽으로만 찾는 경향이었고 지금도 그런 기미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초기단계의 자구책 강구는 당연히 파당적 이해의 보전에만 급급했고 야권통합은 말 이상의 차원이 될 수가 없었다.
다시 5년 후 정권도전을 노리는 「원로」를 하기보다 오히려 당장 다가오는 총선에서 야당의 절멸을 걱정해야하는 형세였다.
두 김씨와 그들의 추종세력이 참패에 대한 뼈를 깎는 자기반생을 통해 거듭 태어나는 인고의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준엄한 여론의 표적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김씨가 뒤늦게나마 야권통합에 나선 것도 나름대로 야당 상황에 대한 분석이 있었음직하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두 김씨는 아직도 그들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얼마나 냉엄한지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들은 어쨋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공감」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공생」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선거로 두 김씨가 지난 30여년간 쌓아온 명망과 권위는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이 되어버려 그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야권내부의 지적은 음미할만하다.
그들이 다시 수십만 군중의 환호와 지지열기를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그래서 또다시 재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까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야권도 실패한 도전을 거울삼아 새 모습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야권의 체질과 체제개편이 당면한 최대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민주·평민당 내부에서도 총선 후 야당의 체제 개편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재야인사·신진세력들이 정치적 세력으로 변신해 야당의 체질개선과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야당의 창당을 내건 것도 기존 야당의 한계 같은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 야당은 하나의 전환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야당의 명맥을 유지하고 야당을 키워오다시피 한 두 김씨의 정치적 한계와 보수야당의 한계 같은 것이 한꺼번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환의 갈림길에서 야당이 완전한 탈바꿈을 하기에는 아직도 취약한 점이 없지 않다. 그것은 두 김씨를 이을 후계세력이 확실치 않다는 점과 진보적 주장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여전히 뿌리깊기 때문이다.
정국운영을 책임지는 두개의 수레바퀴 중 하나인 야당이 환골탈태를 하자면 △정책정당으로서의 확고한 자기위치정립 △차기집권을 담당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의 확보 △두 김씨를 대체할 수 있는 지도부의 세대교체 등이 절실한 상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야권의 다수인사들은 이같은 면모 쇄신을 위해서는 두 김씨를 이을 후계세력이 빨리 등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두 김씨가 영·호남이라는 지역적 파당성을 해소하고 야권대부로서의 병풍역할에 자족하면서 참신한 신진세력을 육성해 그들이 정부·여당에 대해 정책으로써 대응하고 투쟁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야당도 장기간의 권위주의적 억압체제 하에서 불가피한 대응수단이었던 장외투쟁위주의 대여 극한투쟁에서 정책으로 승부하는 발전적 체제로 전환,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게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새 국회는 국정감사권부 활동 권한이 강화되어 있는 만큼 야당이 일정규모의 세력과 참신하고 날카로운 정책대안만 갖출 수 있다면 정부·여당의 독주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고 그 결과 야당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달라질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총선이 야당세력의 소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만약 야당이 의석을 거의 얻지 못하거나 지역정당으로 전락하고 그 대신 거대여당이 등장할 경우 정치구조 차체가 비틀어지고 야당 또한 극심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두 김씨의 인책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후계체제 역시 여러 갈래로 분열되고 자칫하면 야당은 방향타 없이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야당이 견제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만큼 원내의석을 확보한다면 정치생명 연장을 꾀하는 두 김씨와 새로운 도전세력간 갈등으로 체제개편의 진통을 크게 겪게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야권통합이 성공하고 새로운 「진보그룹」이 통합야당을 통해 원내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들이 야당의 체질개선뿐 아니라 야당의 보수적 흐름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야당측은 13대 국회 중에 내각책임제로의 개헌론을 제기하는 등 확실한 정권교체 기회를 갖기 위한 노력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지자제실시와 함께 야권세의 신장은 크게 기대해봄직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두 김씨측은 여전히 장기승부 쪽보다 올림픽 직후 있을 노정권의 신임투표에 한판 승부를 걸겠다는 대여강성 단기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문제가 야권내부의 또 다른 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야권이 수권야당의 면모로 일신해 정권도전세력으로 재기할 수 있느냐 여부는 이번 총선에 달려있고 그것에 대한 전 단계 과제가 통합이라고 하겠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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