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잇단 참사 … 제천에서 또 대형 화재 사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어제 충북 제천의 9층짜리 복합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명 가까이 숨지는 등 50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불이 난 곳은 목욕탕·헬스클럽·음식점 등이 들어선 다중이용시설로, 1층에서 난 불이 유독가스와 함께 건물 위로 타고 올라가면서 삽시간에 번져 피해가 컸다. 특히 2층 여성사우나에 갇혀 있던 20여 명의 여성이 미처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어제 TV를 통해 시커멓게 탄 사고 현장을 바라보던 국민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최근 포항 지진, 낚싯배 전복사고, 이대목동병원 미숙아 집단 사망 등에 이은 이번 참사로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이번에도 과거의 대형 사고처럼 초기 대응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건물 주변에 주차된 차량으로 소방차 초기 진입이 늦어진 탓에 초동 진화에 실패했다고 한다. 소방차가 진입하는 데 필요한 7∼8m의 도로 폭도 확보되지 않아 화재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또 일부 목격자들은 “소방대원들이 사우나 창문을 깨고 구조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주장한다. 출동한 굴절 소방차량이 고장 나 고층에 대피해 있던 주민들 구조가 지연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날씨가 너무 추워 밸브가 터지면서 한동안 굴절차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소방 당국의 해명인데,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건물 외벽이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소재였던 점도 피해를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스프링클러 같은 화재 안전시설의 작동, 소방시설 점검이 제대로 됐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화재는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안전과 관련한 의식과 시스템이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현 정부 들어 ‘안전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나아진 게 없다. 인재에 의한 사고 여부를 따져 상응하는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