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뀐 공정위, “삼성SDI, '삼성물산 합병’ 관련 400만주 물산 주식 추가 처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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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주식 처분 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SDI는 삼성물산에 대해 보유한 주식을 추가로 처분해야 한다”고 사실상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변경 #2015년 삼성물산 합병 건 적용하기로 #2년 전 합병 땐 "500만주만 매각하라" #SDI,내년 9월까지 400만주 처분해야 #김상조, "바뀐 기준 적용 문제없다"

공정위는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은 공정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자 제정한 것이다. 2014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대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신규 순환출자(기존 순환출자 인정)가 전면 금지됐다. 그런데 계열사 간 합병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새롭게 형성되거나 기존 고리가 강화되는 경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에 삼성은 2015년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공정위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전체주식(900만주) 중 500만주를 매각하라”고 결정했다. 양사 간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의 마지막 고리가 이전보다 강화됐다고 보고 합병에 따른 추가 출자분(500만주)만큼 매각(해소)하라고 한 것이다.

삼성 SDI 통한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

삼성 SDI 통한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의 외압으로 삼성이 처분해야 할 주식 수가 900만주에서 500만주로 축소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초 공정위 실무진은 합병으로 삼성SDI와 통합 삼성물산 간 출자 고리가 ‘신규’로 형성된 것으로 판단해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전량(900만주)을 매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올렸다. 그러나 최종 의견은 기존 고리의 ‘강화’로 해석해 처분 주식 수를 500만주로 줄였다. 지난 8월 법원은 이 부회장 1심 판결문에서 공정위에 대한 삼성과 청와대의 로비가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정위는 당시의 주요 쟁점을 다시 따졌고 지난 20일 전원회의를 통해 삼성SDI와 삼성물산 간 출자 고리가 ‘신규 순환출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는 “기존 가이드라인은 순환출자 고리의 경제적 실질이 동일하다는 점을 근거로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며 “하지만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순환출자 형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외부 전문가의 의견도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에 따라 새로운 순환출자가 형성됐다면 이건 불법이 돼 관련 기업은 새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물론 기존 다른 순환 고리를 끊어도 법 위반이 해소 되지만, 삼성 입장에선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파는게 비용적으로 가장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바뀐 해석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순환출자 규제와 관련한 법률은 삼성 합병 당시와 현재가 동일하다”며 “해석 기준의 변경은 소급과는 관계가 없고, 법률 해석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해석을 바로잡아 정당한 처분을 다시 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것은 공정위 내부는 물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도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에 바뀐 합병 관련 순환출자 해석기준을 예규로 제정할 방침이다. 법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예규는 이해관계자와의 의견 수렴 후 공정위 전원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을 거쳐 결정된다. 공정위는 새로운 해석에 따른 기업의 법 이행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예규 제정 이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유예기간이 지난 후에도 처분하지 않을 시 공정위는 시행명령 등 후속 조치를 하기로 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뉴시스]

김상조 공정위원장. [뉴시스]

다만 이런 신규 가이드라인의 변경에 따른 소급 적용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처분이 내려진 사안에 대한 번복 결정은 ‘신뢰 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삼성 입장에선 기존 신뢰가 침해됐다는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저희는 공정위가 주어진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하고 그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법원의 몫이 될 것”이라며 “공정위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음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 질서의 회복을 위한 사회적 책무를 후퇴 없이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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