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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노 대통령 주변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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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새 대통령에겐 이른바「노태우 사단」식의 특별한 인맥이 없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군 시절의 친교관계를 비롯해 친·인척, 지·학연 등으로 이리저리 엮어지거나 멋대로 불리는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조직성을 띠는 뚜렷한 그룹은 없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노태우 대통령을 움직이는 사람은 노 대통령 자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기회가 많음 직 한데도 인맥을 구성하지 않은걸 두곤 해석이 구구하다.
그중 하나는 노 대통령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개성이 강한 편이 아니며 파벌 형성을 좋아하지 않고 누구를 꼬집어 편애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추종세력이 조직화·집단화 될 수 있는 나무그늘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성격과는 상관없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특히 전전대통령의 후계자로 제5공화국 제2인자의 위치로 부상되면서 무엇보다 조심해야 하는 대목이 스스로 세력권을 형성함으로써 대두될 반대세력과의 갈등이란 점을 꿰뚫고 있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80년 당시 김종필 공화당총재가 노 대통령에게 절대 자기 현시를 하지 말라고 체험에서 우러나온 권고를 해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노 인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전전대통령과 사실상 인맥이 겹치기 때문이다. 사실「사람」측면에서 보면 제6공화국은 제5공화국과 구분될 이유가 전혀 없을 정도다.
지난번 내각 개편 때 제5공화국내각에서 8명이 그대로 기용된 것, 주목할 만한 신인이 거의 없었던 것은 두 정부 사이의 인물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노 대통령이 후보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후 선거운동 과정 및 국회의원 공천대상자 선정배경에서 전-현 대통령 측근세력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그것이 마치 권력내부의 대단한 「암투」처럼 소문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사람간에는 정권유지의 핵심세력으로 생각하는 군 맥과 정부 중요기관의 요직 자들을 다소 친소의 농-도 차는 있을지 몰라도「공유」하고 있거나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경제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도 거의 변함이 없으리라는 관측이다.
다만 노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인물들은 경성이 주류였던 제5공화국의 권력주변 측근들보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들이다.
일부에서는 그런 요인조차 6·29라는 불가피한 과정을 거쳐 집권하다 보니「온건」「민주」의 간판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보려는 경향이 없지도 않으나 대체로 그의 주변에서 그를 대통령당선까지 밀어 온 이른바「킹 메이커」들은 온건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거과정에서 표면에 나타났던 그의 측근들은 민정당의 이춘구 의원, 심명보 사무총장, 최병렬 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 현홍주 법제처장, 강용식 의원, 이병기 의전비서관 등이다. 이들은 당과 청와대 주변에서 역시 가까이 보좌할 인사들이다.
노 대통령이 가까이 하고 있는 군 출신으로는 12·12사태의 같은 주역인 유학성 의원(민정), 차규헌 전 교통장관, 황영시 감사원장 등.
이들은 한때 골프 계를 만들어 한 달에 한번씩 만났었다.
그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고「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육사11기 동기생들인 정호용·이기백 전 국방장관, 김복동 광진 공사장, 최성택 유개공 사장, 안교덕씨 등 이 있으며 후배 중에선 김용갑 총무처장관, 허삼수 전 청와대수석 등이다.
노 대통령의 처남인 김복동씨, 동서인 금진호 전 상공장관은 인척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출마의사에도 불구하고「주변관리」라는 이유로 출마를 억제 당하는 불이익을 받았지만 역시 가까이 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인물들.
이와 함께 지난 선거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이른바 TK(대구경북 고)마피아로 불리는 경북지역 및 경북고 출신 인맥들이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정수창 상의회장, 이원경·박동진 전 외무장관등인데 그 동안에도 정권의 핵심 층에서 굵은 뿌리를 박고 있지만 여전히 노 대통령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정희택 전 감사원강, 남웅종 방송광고공사 감사 등은 지금도 자주 만나는 인사들이다.
이중에서 김윤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앞으로 당정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오랜 친구인 이원조 은행감독원장은 노 대통령과도 연분이 깊어 대물림으로 경제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의 인맥은 뚜렷하지는 않은 대신 오히려 광범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를 뒷받침하는 이물들은 그가 성장해 온 군 맥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이후 올림픽 조직위 등 사회활동에서 연분을 맺은 인사들과 당의 인사들이 다른 한쪽을 형성하고 있어 크게는 강경 세력과 온건파들이 망라돼 있는 셈이다.
그가 이런 인사들을 어떻게 기용해 쓸 지에 따라 국정의 흐름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쨌거나 노 대통령이 특별히 내세울 만한 인맥이 없는 걸로 돼 있는 것이 문민 화·민주화를 내세우는 새 공화국의 새 스타일이나 이념과도 맞아떨어지는 점이 있다.
아랫사람들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되 책임을 강조하고 개인기보다 조직력을 높이 사는 게 노 대통령의 스타일로 꼽힌다.
중요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선 신중하다 못해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라고 한다.
한 측근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여론의 흐름을 예의 주시한 뒤 무르익을 대로 익어 꼭지가 떨어질 때쯤 돼야 행동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떤 가용자원을 어떻게 이용해 밸런스를 잡아 나갈 지의 용인 술이 주목된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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