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 여성 200여명 무료 개명해준 78세 법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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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국에 귀화한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 부이티쌍(26)은 최근 이름을 백유정으로 바꿨다. 한국 사람이 됐기 때문에 이름도 한국 스타일에 맞게 바꾸는 게 당연하고 일상 생활에서도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백유정씨는 “이름을 한국인 스타일로 바꾸니 금융기관이나 관공서에서 민원해결하기도 한결 매끄러웠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의 배선위씨 2011년부터 당진지역 이주여성 개명 도우미 #개명서류 직접 작성하고, 수임료 등 50여만원 비용 전액 무료 #배씨, "이주여성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도움주고 싶다" #효자손 개발해 연간 3000~5000개 복지시설 등에 기탁

백유정씨가 성과 이름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당진시 읍내동에서 올해로 27년째 법무사로 일하고 있는 배선위(78)씨다. 배씨는 2011년부터 당진지역 결혼 이주여성 200여명의 성과 이름을 바꾸는 데 도우미 역할을 했다. 개명하려면 허가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법원의 허가를 받은 뒤 그 결정 등본을 받은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동사무소 등에 신고해야 한다. 배씨는 개명허가서를 직접 작성해주고 관련 서류를 결혼 이주여성에게 받아 법원에 직접 제출한다. 이 과정에서 수임료(50여만원)와 인지대·송달료(약 4만원)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다.

법무사 배선위씨가 사무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효자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방현 기자

법무사 배선위씨가 사무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효자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방현 기자

배씨가 결혼 이주여성 개명 도우미로 나서게 된 것은 몇 년 전 결혼이주여성 가족이 만나는 내용의 TV 방송 프로그램을 본 게 계기였다. 배씨는 “TV 방송에 나온 결혼 이주 여성의 행색이 너무 초라해 보여 안타까웠다”며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개명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귀화한 여성들이 성을 새로 만들고 이름을 바꾸려면 돈이 들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개명절차를 모르거나 돈이 없어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주여성이 많다”고 덧붙였다.

배씨가 무료로 개명 도우미 역할을 한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지역 결혼 이주 여성은 하나둘씩 배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씨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두 명 정도는 개명 상담을 받고 있다. 배씨의 도움으로 지난 10월 개명한 정옥효(33)씨는 “배 선생님 덕분에 진정한 한국 사람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
배씨는 또 자신이 직접 개발한 효자손을 복지단체·경로당 등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이 효자손은 기존 효자손의 모양을 조금 바꾼 것이다. 피부 접촉 부분에 인조 실크를 부착한게 특징이다. 배씨는 이 효자손을 2016년 특허등록(실용신안)한 다음 연간 3000〜5000개 만들어 사회복지시설이나 경로당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제작비는 개당 3000원이다.

배씨는 “이주여성이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국가는 물론 국민의 관심사가 돼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당진 지역 이주여성 개명을 도왔지만, 앞으로는 전국의 이주 여성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씨는 서울에서 법원 행정직원으로 일하다 1991년 고향인 당진으로 내려와 법무사로 활동해왔다.
당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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