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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취향] ‘그림왕 양치기’가 현지인 친구 만드는 법

중앙일보

입력

양경수 작가. [사진 정경애(STUDIO 706)]

양경수 작가. [사진 정경애(STUDIO 706)]

“닥치면 못할 일 없어”라는 상사에 말에 부하 직원은 “좀 닥쳐주면 일이 참 잘 될텐데”라며 (속으로) 읊조린다. “말이 잘 안 나오고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환자에게 의사는 “실어증, 일하기 싫어증”이라고 병명을 진단한다. 작가 양경수(34)씨, 필명 ‘그림왕 양치기’의 한 컷 만화를 보고 있으면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다. 이 땅의 직장인에게 폭풍 공감을 불러온 양 작가의 그림 에세이 책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오우아)는 2016년 11월 출간 이후 10쇄를 찍었다. 추계예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본업(?)은 불교현대미술 화가인 양 작가는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드라마·광고 등을 섭렵하고 있는 요즘 대세 작가다.

양경수 작가는 한 컷에 웃픈(웃기고 슬픈) 직장인의 현실을 담아 낸다. [그림 오우아]

양경수 작가는 한 컷에 웃픈(웃기고 슬픈) 직장인의 현실을 담아 낸다. [그림 오우아]

양 작가의 작품 중에는 “난 달라”라고 외치는 직장인이 똑같은 양복을 입고 똑같은 포즈로 달리는 그림이 있다. 양 작가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난 남들과 같은 삶을 사네’라고 보통의 사람들에게 촌철살인을 날린다. 똑같은 명소를 보고 똑같은 인증샷을 찍어오는 여행자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도 매한가지. 여행지에 깊숙이 빠져보고, 진짜 다른 여행을 하라 권한다.

여행을 좋아하나.

여행 싫어하는 작가도 있나. 아, 그런데 남들과 똑같이 ‘인증샷’ 찍으러 다니는 여행은 절대 안 한다. 루브르나 에펠탑 앞에서 인스타그램용 사진만 찍으러 다니는 건 시간이 아깝다. 그럴 시간에 열심히 논다. 나의 여행법은 현지에 깊숙이 녹아드는 것.

현지에 녹아드는 여행이 뭘까.
전국일주 중 우연히 발견한 전북 군산의 서점, 마리서사에서.

전국일주 중 우연히 발견한 전북 군산의 서점, 마리서사에서.

예를 들면 이렇다. 2017년 7월에 2주간 혼자 차를 타고 전국일주를 했다. 전북 군산을 여행하던 중에 작은 서점 ‘마리서사’를 발견했다. 어느 도시를 가면 동네 서점은 꼭 들르는 편이라 들어갔는데, 내 책을 팔고 있더라. 나를 알아봐준 책방 주인에게 동네 초밥집 ‘하코스시’를 추천받았다. 내가 작가인 것을 알아봐준 초밥집에서는 아예 동네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초청해 작은 잔치를 열었다. 군산의 문화 예술가에게 추천을 받아 전주의 작은 독립서점을 순례하게 됐다. 내 여행은 늘 이런 식이다. 우선 현지 친구를 만들고 현지인의 추천 맛집을 가고, 현지인이 가는 서점에 가고 현지인과 어울려 논다.

현지인과 어울리기 위한 팁이 있다면.
'마이 댄스 페스티벌'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도시 뢰렌스코그. [사진 maidansfestival]

'마이 댄스 페스티벌'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도시 뢰렌스코그. [사진 maidansfestival]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같은, 관광객을 위한 동네를 피하라는 것이다. 서울에도 명동이 아니라 아현동이나 쌍문동에 서울사람이 있지 않나. 2015년 5월 노르웨이 여행 때도 그랬다. 오슬로가 아니라 오슬로 근교 뢰렌스코그를 오래 여행했다. 뢰렌스코그는 서울 옆 부천같은 도시다. 여기서는 매년 현대무용 축제 ‘마이 댄스 페스티벌’이 열린다. 젊은 예술가가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동네 축제에 미술 작가로 초청받았다. 북유럽은 일몰 후에 거리에서는 도대체 할 게 없다. 여기 사람들은 술도 마시지 않고 뭐 하나 싶었는데 다들 집에 모여 홈파티를 하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교류하더라. 나도 그렇게 놀았다. 여행 숙소에서 보면 혼자 핸드폰만 보고 있는 동양인은 백이면 백 한국인이다. 우리나라 여행자도 여행을 다니면서 좀 더 현지인 속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더 재밌지 않나? 외국을 여행하면서 이방인인 내가 말을 걸면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 없더라.

여행 갈 때는 뭘 챙기나.
터키 이스탄불 랜드마크 아야소피아 성당. [중앙포토]

터키 이스탄불 랜드마크 아야소피아 성당. [중앙포토]

스케치북과 연필은 꼭 챙겨간다. 여행지에서 사귀게 된 사람들을 그린다.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을 그린다. 그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선물로 준다. 영어는 거의 못하지만 그래서 현지인 친구가 쉽게 생기는 지도. 태블릿도 가져간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을 그린다. 그림을 보면 그때 어떤 장면을 봤고, 그림을 그리게 된 앞뒤 맥락이 다 생각난다. 올해 6월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라마단(이슬람 문화권의 금식 기간)이라서 현지인은 해가 떠 있을 때 금식했다. 일몰 후 금식 해제를 알리는 소리가 온 도시에 울려퍼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신나하던지. 다들 야외로 쏟아져 나와 먹을 준비를 하는 광경이 빚어지더라. 이스탄불 그림을 보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라마단 기간에 방문한 터키 이스탄불.

라마단 기간에 방문한 터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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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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