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 문화충돌의 「심각한 ??극」|박영한씨의 소설『왕룽일가』-홍정선<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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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영한의 『왕룽일가』는 『머나먼 쏭바강』과 『인간의 새벽』등으로 그를 이해해온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변신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소설은 이전에 그가 썼던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나 자전적 생애를 다룬 이야기와는 다르다.
박영한은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소설세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구상을 했었고, 우리는 그 구상의 일단을 83년에 발표한 『지상의 방한칸』에서 이미 읽은바 있다. 그러나 막상 『왕룽일가』란 소설집을 눈앞에 목도한 우리에게 이 변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 느껴진다.
박영한은 『왕룽일가』를 출간하는 기분을 『캄캄절벽을 앞에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그럴 것이다.
박영한은 『왕룽일가』를 통해 이전의 그의 소설이 지향했던 다소 존재론적인 냄새를 띤 휴머니즘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일상사에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작품세계의 변화에 발맞추어 작품세계의 변화에 어울리는 문체의 변화도 시도했다. 이것을 작가는 『서구적 문체에서 토착미가 있는 문체로 전신을 시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은 이 문체의 변화에 각별히 주목해 줄것』을 바랐다.
이 말을 필자가 약간 부연해서 설명한다면 『왕룽일가』의 작품 세계가 산업화된 도시 문화와 전통적인 농촌문화가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심각한 희극」을 형상화해 내는데 있는만큼 문체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환골탈태시킨 것이라는 이야기다.
소설『왕룽일가』의 무대는 「우묵배미」라는 서울 변두리의 한 농촌마을이다.
이 농촌마을에 사는 인물들은 땅에 대한 집착이라는 전통적 가치체계와 이기적으로 화폐가치를 추구하는 도시적 가치체계가 맞부닥치며 빚어내는 희화화된 여러 형태들을 우리 앞에 제시해 보인다.
예컨대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왕룽」처럼 땅에 대한 강인한 집착을 지니고 있는 필용 영감과 관광호텔의 프런트를 본 경력이 있는 며느리가 보여주는 대비적 행동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웃음은 작가의 탁월한 묘사력과 풍자정신이 만늘어낸 것이기 때문에 코미디적인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반성시키는 웃음이다.
필자는 『왕룽일가』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 작가에게 소설가가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이외로 간단하고 시원했다.
『소설에 흥이 붙을 때는 즐겁지요. 이제 소설 쓰는 재미를 느낍니다』라고. 앞으로 2부와 3부로 이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읍내문화」라 부를수 있는 이번 소설보다 조금 더 도시화된 문화의 2중성을 파헤쳐 보겠다는 작가의 생각에 커다란 기대를 표명하면서 필자는 작가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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