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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무기창고(2)] 미사일은 최고의 ‘블루칩’, 6년 만에 10배로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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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5형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 조선중앙통신]

화성-15형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 조선중앙통신]

역시 믿을 건 미사일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75일만에 다시 꺼낸 카드가 미사일이다. 지난달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공개했다. 미국 어디에라도 핵무기를 실어 날려 보낼 준비가 끝나간다. 사거리에 따라 최적화된 다양한 탄도미사일도 준비되어 있다. 김정은이 창고에 쌓여 있을 각종 미사일을 생각할 때면 든든할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간담 서늘한 현실이다. 김정은의 무기창고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을까.

북한, 화성-15형 쏘아 올리고 “100% 국산화 달성” 강조 #70년부터 중국과 소련 참조해 다양한 미사일 개발 이어가 #미국 전역 사정권에 둔 ICBM 실전 배치 초읽기 들어가

북한 미사일 발사 모습. 화성-10형(무수단)과 화성-12, 화성-14형, 화성-15형(왼쪽부터) [사진 중앙포토, 조선중앙통신]

북한 미사일 발사 모습. 화성-10형(무수단)과 화성-12, 화성-14형, 화성-15형(왼쪽부터) [사진 중앙포토,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에게 미사일은 물려받은 유산이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 후반에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옛 소련의 스커드B 미사일(사거리 340㎞)이 모태다. 북한은 81년 이집트로부터 도입해 해체한 뒤 역설계해 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북한은 한반도와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6형(스커드Cㆍ500㎞)ㆍ화성-7형(노동ㆍ1300㎞) 미사일을 개발해 사거리를 늘렸다. 화성-6형(스커드C)은 연료통 크기(미사일 길이)를 늘렸고, 화성-7형(노동)은 화성-5형(스커드B)의 엔진 4개를 묶어 만들었다.

북한 미사일 화성-6형(SCUD)과 화성-7형(노동 미사일) 열병식 공개 모습. [사진 중앙포토, 조선중앙통신]

북한 미사일 화성-6형(SCUD)과 화성-7형(노동 미사일) 열병식 공개 모습. [사진 중앙포토,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이 2011년 12월 정권을 잡았을 때는 화성-7형(1300㎞)이 한계였다. 현재는 사거리를 1만3000㎞까지 늘린 화성-15형을 개발해 성능이 10배나 커졌다.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집권 1년차였던 이듬해 12월 은하-3호 발사과정을 직접 지켜봤다. 과학자들에게 연회도 열고 아파트도 마련해줬다. 김정은이 주도하는 미사일 개발은 예상보다 속도가 빨랐다. 지난 5월에는 한 달 동안 4번이나 실험을 했다. 서두르다 보니 실패도 드러났다.

북한이 1998년 8월 발사한 광명성 1호 [사진 중앙포토]

북한이 1998년 8월 발사한 광명성 1호 [사진 중앙포토]

무수단 미사일(4000㎞)로 불리는 화성-10형은 2016년에 총 8회 실험했지만 단 한 번만 성공했다. 액체추진 엔진에서 연료가 새어나와 연이어 폭발했다. 2007년께 화성-10형을 실전에 배치한 이후 첫 실험이었다. 북한은 91년 옛 소련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SS-N-6(R-27)’의 엔진 150여 개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옛소련 미사일 전문가들의 기술 지원도 한몫했다. 이런 도움을 받아 화성-10형(무수단)을 개발했지만 발사 실험을 하지 않아 성능에 의문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실패는 밑거름이 됐다.

“모든 요소들을 100% 국산화, 주체화하는 돌파구를 열었고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며 김정은이 지난달 29일 화성-15형 실험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기뻐할만 했다. 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돼 최고 고도 4475㎞에 950㎞ 거리를 비행했다. 정상 각도로 쏠 경우 1만3000㎞ 떨어진 미국 플로리다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별장도 표적에 들어온다.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이다. 앞서 실험했던 화성-12형은 9월 15일 정상 각도로 발사돼 최고 고도 770㎞에 거리 3700㎞, 화성-14형은 7월 28일 실험에서 고각 발사로 최고 고도 3724.9㎞에 올랐고 998㎞를 날아갔다. 북한 당국은 이번 실험을 두고 ‘11월 대사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발사전에 준비 과정을 둘러보는 김정은.[사진 조선중앙통신]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발사전에 준비 과정을 둘러보는 김정은.[사진 조선중앙통신]

화성-15형은 백두산 엔진 두 개를 달아 추진력을 키웠다. 지난 3월 18일 실험했던 신형 엔진이다. 이 엔진의 분사 실험이 성공했을 때 김정은이 개발자들을 업어주며 ‘3ㆍ19 혁명’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성능에 만족했다는 얘기다. 추력편향장치를 적용해 보조 엔진이 없어도 방향 조절이 가능해 졌다. 여기에 2단 추진체 크기도 늘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게 됐다. 형상은 계단식으로 줄어들던 화성-14형과 달리 탄두부분까지 일직선 구조다. 권용수 전 국방대학교 교수는 “탄두 무게 제한없이 사거리를 최대한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제는 대기권 재진입(re-entry) 기술이 관건이다. ICBM은 음속의 20배 이상의 속도로 대기권에 들어온다. 이때 엄청난 충격과 섭씨 7000~8000도에 이르는 고열이 발생한다. 탄두 부분이 닳아 없어지는 삭마(削磨) 현상이 균일하게 이뤄지지 못하면 균형을 잡지 못해 방향을 잃거나 진동이 발생해 공중에서 폭발한다. 북한은 앞서 2016년 3월 탄두 대기권 재진입 모의 실험을 공개했다. 지난 8월 23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다녀갔다며 ‘로케트전투부 첨두’를 공개했다. 이어 “대기권 재돌입 능력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동안 탄두 모양도 다양하게 바꿨다. 화성-14형은 앞쪽은 뾰족하고 원뿔 중간이 볼록한 모양이었지만 화성-15형은 뭉툭하다. 탄두가 뭉툭하면 열이 분산돼 그만큼 삭마가 줄어든다. 또 진입 속도가 줄어들어 오랜 시간 연소하더라도 탄두가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재진입과 종말단계 유도 분야 기술은 입증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CNN도 재진입 과정에서 폭발해 정상적으로 낙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미국 참여과학자연대(UCS) 데이비드 라이트 박사는 "(북한은)아마도 정상 각도에서 성공적인 재진입이 가능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소재를 개발·생산하는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23일 보도했다.[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소재를 개발·생산하는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23일 보도했다.[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미사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SLBM ‘북극성’ 실험에도 성공했다. SLBM은 액체추진 연료가 아닌 고체연료를 사용했다. 원통형 발사대에서 콜드런칭 방식으로 발사된 후 자세를 수정한다. 연료 주입 시간이 필요 없어 빠르게 발사할 수 있다. 잠수함이 수면 가까이 올라와 언제라도 쏠 수 있어 매우 위협적이다. 여기에 핵무기도 실어 쏠 수 있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북극성-2형(왼쪽)과 수중에서 발사 실험한 북극성 [사진 조선중앙통신]

지상에서 발사하는 북극성-2형(왼쪽)과 수중에서 발사 실험한 북극성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 2월 새로운 SLBM을 선보였다. 노동신문은 “새로운 전략무기체계인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2형’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동형 발사대(TEL)에 장착해 지상에서 쐈다. 궤도형 차량이라 산악 지형에 은밀하게 숨을 수 있다. 한ㆍ미 연합군의 감시망을 피해 킬체인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이어 5월에는 북극성-2형의 세 번째 실험을 하고 비행거리 500㎞에 최고 고도 550㎞를 기록했다.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사거리는 약 2000㎞로 추정된다. 한반도와 일본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온다. 김정은이 8월에 국방과학원을 방문했을 때 북극성-3형의 설명판도 비춰졌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는데 여기에 SLBM으로 무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스커드미사일. 윗부분에 카나드(보조날개)가 달렸다. 군 당국은 이 미사일이 북한이 개발한 대함탄도미사일(ASBM)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스커드미사일. 윗부분에 카나드(보조날개)가 달렸다. 군 당국은 이 미사일이 북한이 개발한 대함탄도미사일(ASBM)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올해 4월 15일 열병식에서 지대함 미사일(ASBM)도 공개했다.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될 미국의 항공모함 강습단을 노린다. ASBM은 미사일 비행과정의 마지막 부분인 종말단계에서 목표물의 이동 방향에 따라 궤도를 수정한다. 북한은 5월 29일 실험을 한 뒤 “정밀조종유도체계를 도입한 탄도로케트를 새로 개발하고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적 함선을 비롯한 해상과 지상의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예정 목표점을 7m 편차로 정확히 명중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중국과 옛 소련에서 들여온 미사일 기술을 활용해 앞으로 미사일 개발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이 당장은 김정은 정권을 지탱해줄 지는 모른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북한이 개발한 ICBM은 결국 미국의 대응을 유발해 북한의 운명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김정은 스스로 운명을 재촉할 수도 있다. 지난달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이 탈북해 충격을 줬다. 이 탈북자의 위생상태는 그동안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김정은이 주민 생활보다 정권 안보에 몰두한 결과다. 핵과 미사일에 몰입한 김정은의 운명은 어디로 갈까.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 ‘김정은의 무기창고’는 북한군 무기체계를 비롯한 군사관련 이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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