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과 지하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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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정보회로가 막히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우리가 익히 경험했다. 비어가 난무하고 그럴듯한 억측과 추측, 악성루머가 나돌게 마련이다. 정보의 갈증을 사발통문으로 해소하고 정부의 공식발표 보다 유비 통신에 기대는 현상도 나타난다. 언로가 막힌 사회는 동맥경화증을 일으켜 상호불신과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가 되기도 한다.
유언비어를 악용하거나 편승해 갖가지 정치 매터도가 횡행하고 정부계획 등 그럴싸한 소문을 퍼뜨려 부동산 투기나 사기사건도 빚어진다.
양성화된 뉴스 대신 지하신문이나 대자보를 믿고 그런 매체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나타나 공인된 정보회로가 맥을 못쓰는 사실도 숱하게 경험했다.
그러나 언로가 트이면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17년간 우리 나라와 관계되는 각종 유언비어를 실어 그쪽 세계에선 인기를 끌어오던 일본의 『세계』라는 잡지가「한국으로부터의 통신」게재를 3월 호를 끝으로 중단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잡지는「서울 구로동 학살사건」이라는 악성루머를 비롯, KAL기 테러사건이 우리정부의 자작 극이라는 등 그 동안 뜬소문을 진실인양 왜곡보도를 능사로 해왔다.
필진 가운데는 조총련 지지자나 공산당 주변 인물 등을 등장시켜 멋대로 헐뜯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굴절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6·29 선언과 그후의 정치발전, 언론의 활성화로 문제의 고정란이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건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정부의 위력과 공권력으로도 어쩔 수 없던 골칫거리가 언론의 활성화라는 본원적 처방으로 단번에 신통력을 발휘했다는 걸 소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밝고 명랑한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든 걸 순리에 따르고 현명하게 대처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법이다. 치열한 국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정보가 열쇠라는 말이 있듯이 정보는 오늘날황금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보의 과점과 독점 현상이 지나쳤고 정보의 공유나 확산은커녕, 국민은 배급된 정보에 만성적 공복 감을 느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의 언론상황은 6·29이전과는 격세의 감은 있을지 모르나 만족할 정도는 못되고 있다.
아직도 이른바 성역들이 적지 않으며 기자들의 접근도 허용되지 않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 몇몇 국가기관에 대해 자유로이 취재하고 보도는 못하더라도 접근권 (right to access) 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어 왔다.
우리가 처한 안보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비공개와 비밀주의는 민주화와 개방사회를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결코 이로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노태우 차기 대통령이 지난 6일 국방부 업무보고를 듣는 자리에서「무조건의 비밀유지는 불필요한 유언비어의 발생을 낳는다」고 지적, 언론과 야당 지도자들에게도 수시로 브리핑해 주라는 당부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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