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7급 공무원 A씨는 요즘 팀장(5급) B씨의 달라진 태도에 어리둥절하다. 가끔 욕설도 섞어 질책하던 상사가 말투부터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업무 지시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A씨는 “오늘(30일)은 급기야 팀장이 ‘요즘 점심은 챙겨먹고 일하느냐’고 물었다. 이 ‘어색한’ 변화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부하직원의 평가를 의식한 ‘인기관리’가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서울시, 29~31일 다면평가 실시 #하위 10%는 승진 대상에서 제외 # “힘든 일 시킬 때 부하 눈치 보여” #감정적·극단적 평가에 대한 우려도
지난 29일부터 서울시청에서 시작된 공무원 ‘다면평가’가 낳은 새로운 풍경이다. 31일 끝나는 이번 평가는 다음 달 하반기 정례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다면평가란 상급자와 동료에게는 물론 하급자에게도 평가를 받는 제도다.
서울시는 ‘다면평가 확대’ 등 인사제도 개선을 골자로 한 ‘조직문화 혁신대책’을 시행 중이라고 30일 밝혔다. 시는 지난 9월 과중한 업무를 토로한 7급 공무원의 자살 이후 후속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서울시에선 이전까지 4·5급 공무원들 중에서도 승진 대상자들에 대해서만 다면평가를 실시해왔다. 평가 결과도 승진에 별다른 영향이 없는 ‘참고자료’로만 활용됐다. 하지만 앞으로 다면평가 점수가 하위 10%인 공무원들은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다. 성과상여금도 줄어들 수 있다. 평가 대상자도 1~3급(정무직 공무원 제외) 공무원을 포함한 ‘5급 이상 공무원 전체’로 늘어났다.
송수성 서울시 기획조정실 기획행정팀장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평가자의 수도 상사·동료는 종전과 같지만, 부하직원의 수를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김권기 서울시 인사과장은 “이른바 ‘갑질상사’와 같이 부적합 인물이 승진하는 것을 예방하려는 취지다”고 설명했다.
부하직원의 상사 평가 항목은 ▶조직관리 ▶윤리의식 ▶목표방향제시 등 10여 개 항목이다. ‘업무 배분을 적절하게 했는지’를 따지는 조직관리의 배점이 가장 높고(6.5점), 총점은 50점이다. 윤리의식은 성희롱과 언어폭력 여부를 묻는 항목이다.
하급자의 평가가 승진을 좌우하다보니 일부 상사들은 직원들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5급 공무원 C씨는 “어렵고 힘들 일을 시키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이 일을 시켜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직원이 누굴까’하고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상사인 4급 과장님도 이전엔 업무 독촉이 심했는데, 이젠 좀 느긋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면평가의 객관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4급 공무원 D씨는 “감정이 섞인 극단적 평가는 어떻게 거를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모르겠다. 적절한 평가를 위해 평가자에 대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승진심사위원회에 참여하는 직원의 수를 종전 4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4명은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에서 추천하고, 4명은 공개 모집할 계획이다. 김권기 인사과장은 “이전까진 이들이 참관자에 불과했지만, 발언권을 주고 인사에 적극 반영할 것이다”고 말했다.
전보제도도 개편한다. 선호 부서에서 7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제한한다. 동시에 격무·기피 부서 근무자에게는 승진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전문성을 키운다는 이유로 한 부서에 오래 근무하는 것을 권장해왔다. 김권기 인사과장은 “선호부서 직원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격무 부서끼리만 인사가 오가는 폐단이 발생해 이를 개선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