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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토리노 함성의 메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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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쇼트트랙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 돼왔다. 14년 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처음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선보였을 때, 세계 언론은 금메달 2개를 따낸 한국을 주목했다. 경기 인구라야 400명 정도에 불과한 데다 전용 링크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그러한 강자들이 탄생했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이번 토리노 대회에서도 감탄은 계속 이어졌다. "겨울올림픽에서 자연적인 조건보다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메달 획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범국인 한국이 증명해 줬다"는 한 외신의 평가가 눈길을 끈다. 메달 숫자나 색깔을 따질 것 없이 무서운 경쟁력을 갖추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바로 '모범'이라는 이야기다.

흔히 쇼트트랙의 승부는 두뇌싸움과 작전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오해가 있다. 이번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막판 스퍼트로 선두를 추월하는 상황을 보면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스피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4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3관왕에 올라 솔트레이크시티의 한(恨)을 푼 안현수 선수의 전력질주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일본 언론의 지적처럼 한국 선수들의 훈련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얼마나 지독한 훈련을 했는지…. 이번 토리노에서도 조직위 측에 특별 교섭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곱절의 훈련을 소화하면서 링크 적응력을 키웠다고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올림픽 출전을 눈앞에 두고 쇼트트랙은 심한 홍역을 치렀다. 승부 조작 의혹과 선수촌 훈련 거부에 이어 선수들 간의 반목과 갈등설, 특정 팀 중심의 파벌 훈련, 그리고 선발 과정의 불공정 등이 언론에 비친 쇼트트랙의 문제점이었다. 두 달 전 한 방송의 헤드라인은 '한국 쇼트트랙 곪아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승부 조작과 파벌 훈련 의혹을 계속 내비쳤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자극이 오히려 약이 됐을지도 모른다.

한국 빙상은 한마디로 미스터리에 속한다. 북미나 유럽 여러 나라와 견줘 기후조건은 물론 인프라도 매우 열악하다. 제대로 된 국제 규모 실내경기장은 태릉 링크 하나뿐이다. 대부분의 아이스링크가 수익성을 따져 대표선수들의 주간훈련을 기피하는 추세다.

스피드와 쇼트트랙을 다 합쳐도 선수는 1000명도 안 되고, 영원한 비인기 종목으로 스탠드는 늘 텅 비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왔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다.

토리노 대회 이후 세계는 한국을 더욱 견제할 것이다. 쇼트트랙 종목을 올림픽에서 아예 빼버리자는 주장도 있었고, 양궁처럼 한 나라의 메달 독식을 금지하는 규정이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의 해답은 지금의 강세를 살려 스케이팅을 비롯한 겨울스포츠 전반의 활성화와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2014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유치의 꿈이 이뤄진다 해도 경기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면 허망한 일이다. 쇼트트랙만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과 스키에서도 메달 후보를 내야 한다. 겨울올림픽에 흑인 금메달리스트가 등장한 것을 보면 결코 헛된 꿈이 아니다. 평창의 '열망'이 꽃피는 날을 기다린다.

이태영 스포츠포럼 대표·명지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