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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권진규-박용숙 <미술 평론가><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권진규씨를 처음 만나게된 것은 71년12월에 있었던 명동화랑의 개인전 때였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때 중앙일보를 통해 막 미술평론가로 데뷔한 때였고 그는 일본에서 귀국한지 2년쯤 되는 때였다. 작고한 김문철씨가 그때 화랑 주인의 입장에서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김씨가 그가 일본에서 돌아 온지 얼마 안 된다는 것, 일본의 니혼바시(일본교)화랑에서 있었던 개인전이 절찬리에 끝났다는 점을 장황하게 늘어놓자 그는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김씨의 이야기가 시작 되었을때 그가 사라졌던 향방이 어딘지는 모르지만(그는 종종 그런 식의 무례한 해프닝을 했다고 한다)나는 그때 심상찮은 예감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 앞에서는 어린애였고, 작품을 만드는 일엔 미치광이고, 세상일에 대해서는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 1년쯤 지나서 나는 잡지『공간』의 편집을 맡게되어 그의 작품들을 소개할 목적으로 역시 김씨와 함께 동선동 산동네에 있었던 그의 공방(아틀리에)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그는 서울대 공과대학에 출강 중이어서 공방은 잠겨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의 매부가 되는 허모씨로부터 권진규 공방에 도둑이 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바탕 웃었다.
밤중에 도둑이 들어와 그의 여체 누드조각 하나를 메고 갔다. 방범대원이 그 사실을 확인하려하자 그는『예술을 아는 사람이 어찌 도둑일수가 있겠소』라고 하며 도리어 그들을 안심시키며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도둑이 메고 간 여체조각이 마을의 어느 시궁창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죄 없는 문만 걷어찼다고 했다. <호암갤러리서 23일까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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