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5시쯤 서울의 ‘퇴근길 동맥’이 막혀 버렸다. 직장인이 몰려 있는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마포대교 양방향이 차단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 1만2000여 명(경찰 추산)이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 뒤에 벌어진 일이다.
경찰에 신고된 일정대로라면 노조원들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KBS 연구동 앞까지 행진한 뒤 오후 6시에 해산해야 했다. 오후 4시 반쯤 국회 논의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흥분했다. 국회와 청와대로 가겠다는 행진이 경찰에 막히자 이들은 마포대교로 이동했다.
마포대교 남단 양방향 통행이 막히면서 여의도를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려던 차들은 1시간 넘게 도로에 갇혔다. 우회하는 차들이 다시 막혀 서여의도 일대와 마포대로 전체가 주차장이 됐다. 전경련이 주최한 한·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센터 포럼의 만찬에 참석하려던 주요 인사와 각국 대사들은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인터넷과 포털에는 “건설노동자들의 권리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식이면 국민이 공감하겠느냐”는 글이 많았다. 사회적 약속이자 배려의 마지노선인 집회 신고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집회와 시위의 헌법적 가치를 이해하는 많은 시민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예고된 집회 일정과 교통 통제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날 시위대와 경찰은 성숙한 시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경찰은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의 무산, 생존권 투쟁 군중의 돌발 행동은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대규모 평화집회에도 늘 차벽과 물대포까지 동원하던 경찰 아닌가. 인권 경찰로서 새로운 집회 문화 창달에 나선 것이었다면 경찰력의 공백을 메울 보다 치밀하고 현명한 대안이 있어야 했다. 경찰은 당일 오후 6시를 넘겨 시위대가 발걸음을 돌릴 때까지 한발 늦게 쫓아가 해산명령을 반복했을 뿐이다. 관할 영등포경찰서는 집회 과정에서의 불법 행위를 수사하겠다고 29일 밝혔다.
건설노조 측은 “시민께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건설노동자들의 절박한 심경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퇴근길 마포대교 정체 사태에 대한 비난 여론을 보면 이번 집회가 그들에게 도움이 됐을지 의문이다. 폴리스라인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고 퇴근길을 마구잡이로 점거하는 행동을 이해할 시민은 많지 않다. 과격한 시위대와 안이한 경찰 모두 시민의 고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