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용 장관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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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31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부.여당의 움직임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열린우리당 부산시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이 어제 부산에서 출판기념회를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대구시장 후보로 거명되는 이재용 환경부 장관이 선관위로부터 경고성 공문을 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데도 여당 지도부가 대대적으로 참석해 '준비된 부산시장 후보''출정식 뜻이 담긴 출판기념회'라는 발언을 하고, 오 장관은 '주도 세력을 바꿔야 한다'고 외친 것은 결코 적절하지 못한 행태다.

선거에 내보내기 위해 경력을 관리해 주려고 장관에 기용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현직 장관이 선거운동으로 비춰질 수 있는 행사나 발언을 하는 것은 공직 기강을 흩트릴 뿐 아니라 관권선거 논란을 자초하게 된다.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가 없었다면 무엇 때문에 이 시점에 해양부 장관이 부산에서 출판기념회를 하고, 환경부 장관이 대구에서 '부패한 대구 지방권력 교체'에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선관위도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어느 때보다 과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몸을 사리면 공정선거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하위직 공무원의 선거운동에는 엄격하면서 고위 공직자의 선거 개입에는 느슨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국민이 수긍할 리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정과 반칙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패배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그렇다면 현직 장관들이 부정과 반칙, 탈법과 편법 선거운동을 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이런 행태를 방치하면 관권.금권선거가 판치게 되고, 기껏 이뤄놓은 선거개혁이 허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