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아트센터 (5) 빈 무지크페어라인 유리 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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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스트리아 빈이 세계 클래식 음악의 수도를 자처하는 것은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 등 이곳에서 활동한 작곡가들 때문만은 아니다. 1870년 개관 이후 음향이 좋기로 소문난 빈 무지크페어라인(음악애호가협회) 홀이 있기 때문이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로 유명한 콘서트홀이다.

기자는 4년 전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빈 심포니와 함께 차이코프스키를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온몸을 휘감는, 풍만하면서도 명료한 사운드가 주는 벅찬 느낌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때 바깥에는 굴삭기들이 정신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건물 앞 골목 지하를 파서 다목적 홀을 만드는 공사였다.

당시 연주홀이 황금홀(1744석), 브람스 홀(600석), 아이넴 홀(실내악 연습실)에 그쳐 연습실이 부족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당장 빈 필하모닉만 하더라도 마땅한 연습실이 없어 공연이 없는 낮에 황금홀 무대에서 연습해야 했다. 하지만 텅빈 객석 때문에 연주 때와는 음향 조건이 다르다. 예를 들어 잔향 시간이 훨씬 길어지는 특징을 감안해야 한다.

공사가 끝나고 2004년 지하의 첨단 문화공간 4곳이 문을 열었다. 이제는 일요일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게는 10회의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린다.

지하 공연장은 벽면과 바닥의 재질에 따라 '유리'(380석),'쇠'(90석),'돌'(70석),'나무'(50석) 로 명명됐다. 그중 가장 큰 무대가 유리 홀이다.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국립오페라와 바덴바덴 축제극장을 디자인한 오스트리아 건축가 빌헬름 홀츠바우어와 디터 이레스버거 콤비가 설계를 맡았다.

가장 큰 특징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두께 8~16㎜짜리 유리 판넬을 움직이면 행사의 성격에 맞는 음향 조건을 연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100명, 합창단 140명 등 240명의 연주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리허설 룸으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재즈 콘서트.세미나.전시회.기자회견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가변형 객석 구조라 테이블을 놓으면 200명을 수용하는 레스토랑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지난달 27일 모차르트의 250회 생일을 맞아 클라츠브라더스와 쿠바 퍼커션이 공연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빈=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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