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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인사이트]인공지능 개발 경쟁…승부처는 '인간 감성 입히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미국의 패스트푸드 업체 타코벨은 업계 최초로 고객이 메시지로 음식을 주문, 결제할 수 있는 타코봇(TacoBot) 베타 서비스를 선보였다. 타코봇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자연어로 메뉴를 추천하고 주문을 받을 뿐 아니라 위트 있는 모습을 보여 화제를 낳았다. 숙취가 심해 고생이라는 고객에게는 물 한잔을 추가해주고, "네가 좋아"라는 고백에는 "나는 감정이 없어요.. 하지만 나도 당신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미국의 구직 사이트 퍼스트잡에서 운영하는 인공지능 기반 챗봇 미야. 챗봇 도입이 다양한 분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중앙포토]

미국의 구직 사이트 퍼스트잡에서 운영하는 인공지능 기반 챗봇 미야. 챗봇 도입이 다양한 분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중앙포토]

유통, 금융업을 중심으로 고객에게 상품을 추천하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챗봇 도입이 다양한 분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음성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도 대중화되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손으로 터치하기보다 시리나 빅스비와 대화하거나 일상적인 잡담을 즐기는 풍경이 흔해졌다. 아마존 알렉사(Alexa)를 필두로 구글 어시스턴트(Assistant),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Cortana) 등 인공지능 플랫폼이 스피커에 탑재됐고, SK텔레콤 누구, 카카오 미니, 네이버 웨이브 등 국내 업체들도 최근 스마트 스피커를 앞다퉈 출시했다.

알렉사·시리·빅스비의 챗봇 서비스는 #고객에게 아마존·애플·삼성 대변인 역할 #고객 접점 넓은 챗봇의 실언은 공분 유발 #인간 감성 가진 인공지능이라야 진짜 성공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음성인식 플랫폼 ‘ 알렉사’는 많은 로봇과 기기에 적용됐다. 알렉사가 탑재된 로봇 ‘ 링스’(중국 유비테크)가 지난 1월5일(현지 시간) CES 2017 전시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음성인식 플랫폼 ‘ 알렉사’는 많은 로봇과 기기에 적용됐다. 알렉사가 탑재된 로봇 ‘ 링스’(중국 유비테크)가 지난 1월5일(현지 시간) CES 2017 전시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기업의 대변인 자리를 인공지능이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알렉사, 시리에 질문하거나 지시하는 것은 아마존, 애플과 대화하는 격이다. 고객이 알렉사를 통해 피자를 주문하고 항공권을 예약하면 피자 업체와 항공사들은 알렉사를 거치지 않고는 고객을 만나기 어려워진다. 고객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두고 벌어지는 인공지능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하반기에 새로 출시된 인공지능 스피커. 왼쪽부터 네이버 프랜즈 clovar ai 스피커, 네이버 웨이브, sk텔레콤 '누구 미니', 카카오미니, 아마존 '에코닷'. [중앙포토]

하반기에 새로 출시된 인공지능 스피커. 왼쪽부터 네이버 프랜즈 clovar ai 스피커, 네이버 웨이브, sk텔레콤 '누구 미니', 카카오미니, 아마존 '에코닷'. [중앙포토]

시장이 성장할수록 소비자 니즈도 고도화된다. 대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수 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기능은 판매원이나 상담 직원이 고객 요구에 신속, 정확하게 응대하는 기본적인 서비스 수준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는 지성을 넘어 인성과 품격으로 확대된다. 구글 포토 앱이 흑인을 고릴라로 분류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2015년만 해도 시장은 관대했다. 인공지능의 편견이나 차별이 기술적 오류나 알고리즘 부작용 때문이라는 해명은 이제 효력을 잃고 있다.

구글의 음성비서 구글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구글홈. 지난해 10월 출시됐다. [사진 구글]

구글의 음성비서 구글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구글홈. 지난해 10월 출시됐다. [사진 구글]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청소년들과의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챗봇 테이(Tay)를 선보였다가 낭패를 겪었다. 20대 소녀 컨셉트로 개발된 테이가 딥러닝 기술을 악용한 극우 성향 사용자들로 인해 욕설하고 인종차별과 대량학살을 지지하는 문제아로 변질하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테이 운영을 16시간 만에 중단했지만, 부작용을 예측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 두 사람을 응대하는 직원과 달리 무수히 많은 고객을 대하는 인공지능의 잘못은 단번에 공분을 불러 일으켜 기업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린다.

채팅창에 띄워진 인공지능 로봇 '테이'의 모습. [중앙포토]

채팅창에 띄워진 인공지능 로봇 '테이'의 모습. [중앙포토]

인공지능 브랜딩은 지성과 인성에 개성이 더해질 때 완성된다. 매뉴얼을 따르는 정확하고 예의 바른 고객 서비스만으로는 진정한 브랜드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비트너(Bitner) 교수의 실험은 고객 접점에서 전달되는 브랜드 개성이 고객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그는 세련된 이미지의 고급 백화점과 거친 느낌의 아웃도어 브랜드를 비교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에 문제가 있어 전화를 건 고객에게 공감을 표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급 백화점은 정중하게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네요(I’m sorry that happened),” 아웃도어 브랜드는 활기찬 목소리로 “세상에 저런! (Well bless your heart!)”이라고 응대했을 때 고객의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지고 경쟁사 제품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의향도 커졌다.
반대로 세련된 백화점의 직원이 거친 말투로, 아웃도어 브랜드의 직원이 격식을 차린 표현을 사용했더니 고객 선호도와 서비스 평가 수준이 훨씬 낮아졌다. 실험 참가자들은 “직원이 친절하고 상담 내용이 도움은 됐지만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았다”, “격식 차리지 않는 대화는 브랜드의 도도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객 접점 직원의 태도가 브랜드 개성과 일치할수록 고객은 정보를 더 쉽게 처리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는 의미다.

한 백화점 실험에서 고객들을 대하는 직원 태도가 브랜드 개성과 일치할수록 고객은 정보를 더 쉽게 처리하고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유커(중국 관광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는 모습. [사진 롯데백화점]

한 백화점 실험에서 고객들을 대하는 직원 태도가 브랜드 개성과 일치할수록 고객은 정보를 더 쉽게 처리하고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유커(중국 관광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는 모습. [사진 롯데백화점]

인공지능의 성격과 태도는 목소리 성별과 말투, 대화 내용과 방식 등을 통해 표현된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남성, 코타나, 알렉사는 여성으로 설정되었고, 애플 시리와 구글 나우는 고객이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공지능이 똑똑하고 성실한 느낌을 주고 간단한 농담에도 무난하게 대꾸한다.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답을 찾지 못할 때 미안해하는 기색도 비슷하다.
한편 미묘한 차이도 보인다. 코타나는 이지적이면서 사려 깊은 여비서로 포지셔닝 되어 비속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시리는 조금 건방진 듯하고 간혹 질투도 한다. 실수로 다른 이름을 부르면 "차라리 알렉사에 부탁하지 그래요"라며 뾰로통 해한다.
이미 선두기업들은 인공지능에 브랜드 개성을 입히는 작업에 돌입했다.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등을 영입해 팀을 구성했다. 코타나 고유의 말투를 만들기 위해서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소통 디자이너는 알렉사가 대화 도중 "흠…"이나 "아 참!" 같은 감탄사를 적절히 사용하는 기술과 고객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이나 저속한 대화를 세련되게 차단하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성격 트레이너나 TV 프로그램의 자막 제작자들에게도 러브콜을 보낸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인공지능에 생명과 개성을 불어넣는 직업이 새로운 유망직종(hot job)으로 떠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성인식 비서 코타나.  [사진 플리커]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성인식 비서 코타나. [사진 플리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엔지니어들이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일 때 마케터는 지성과 인성을 갖춘 인공지능이 고객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고민해야 한다. 명석하고 냉철한 비서, 톡톡 튀는 매력을 지닌 친구, 다정하고 낭만적인 연인 등 나름의 개성을 지닐 때 고객과의 관계는 무르익는다. 독창적인 개성과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한국기업의 사례는 여전히 많지 않다. 성실하지만 멋이나 유머는 부족한 모범생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고객 곁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공지능의 경쟁은 고객 마음 경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Tech) 경쟁의 승리는 결국 감성(Touch)을 사로잡는 기업에 돌아간다.

최순화 교수(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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