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시진핑·언론·학자까지 사드 압박 … 한국은 ‘평창’에 급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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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 중국이 반복적으로 한국의 추가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10월 31일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드 문제가 ‘봉인’됐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측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새로운 논리들을 들고 나오고 있다.

중 언론 “3불 무시 땐 관계 곤두박질” #학자들 통해 "사드기지 시찰" 재주장 #한국, 평창 통한 남북 개선 사로잡혀 #“사드 철수 없다 말할 수 있나” 질문에 #외교부 고위 당국자 제대로 답 못해

◆전방위 공략 중인 중국=중국은 트랙1(정부)과 트랙2(민간)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치밀한 공세를 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각각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사드 반대와 더불어 ‘단계적 처리’를 들고 나왔다. 왕이(王毅) 외교부장도 지난 2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를 강조하며 ‘행동’을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선 한국의 추가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측은 이번 외교장관 회담에서 사드를 12월 한·중 정상회담 의제에서 제외하는 데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중국은 ‘장외 병기’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3불(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등의 불가)에 더해 ‘+α’를 제기하고 나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23일 ‘3불 1한(3불과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 사용 제한)’을 주장한 데 이어 다음날 “한국이 (3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중·한 관계가 낮은 단계로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썼다.

중국 학자들을 통해 “중국이 한국에 사드 기지 시찰과 사드 레이더 차단벽 설치를 요구했다”는 소문도 전파되고 있다. 외교가 소식통은 “사드 기지 시찰은 이미 4~5월께 중국이 요구했던 사안인데, 새 논리와 헌 논리 모두 들고 나와 사드 문제를 한국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며 “현재 배치된 사드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창’ 탓 주도권 넘긴 한국=중국의 이 같은 공세를 두고 청와대 등 여권은 중국 여론관리용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0·31 협의 결과 때문이라고 우려한다. 당시 양국은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측이 우려하는 사드 관련 문제에 대해 소통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군사 기술적 문제를 추가로 제기하려는 것이다. 반면에 사드 보복에 대한 유감은 물론, 한국의 우려를 다룰 메커니즘에 대한 규정은 빠졌다. 또 발표문에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한 게 북핵 위협 때문이란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이 “최종 단계는 사드 철수”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한국이 “북핵 위협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안 된다”고 맞받을 근거가 10·31 발표엔 없다는 의미다.

이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을 꾀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이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이른바 ‘평창 구상’에 정부가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두르는 쪽이 협상에서 더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외교 소식통은 “12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시 주석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한국 측 패인데, 이를 모두 공개해 버렸다. 수를 읽은 중국이 이제는 ‘더 내놓으라’는 식의 고자세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최근 기조도 수세적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4일 중국을 향해 ‘북핵 위협이 제거되기 전에는 사드를 철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다섯 번 재촉 후에야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의 ‘단계적 처리’ 입장에 대해서도 “중국 측은 회담 중에 이를 ‘현 단계에서 문제를 봉합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현재에서 일단락을 짓고 조속히 교류협력이 발전 궤도로 회복하도록 노력하자는 의미인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론 “한·중 관계 개선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속내는 복잡하다. 최근 미 정부 당국자를 만난 한 전문가는 “‘한국은 앞으로 전략무기를 배치할 때마다 중국의 허락을 받을 것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더라”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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