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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한 여우가 병아리 돌본다고?…엉뚱함이 전하는 따뜻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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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배드 폭스'의 한 장면 [사진 북레시피]

'빅 배드 폭스'의 한 장면 [사진 북레시피]

여기, 암탉과 돼지 등 가축이 모여 사는 농장과 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여우가 있다. 그런데 여느 동화에서와는 달리 여우는 잔인하고 교활한 맹수가 아니다. 주린 배를 채우려 슬금슬금 농장으로 들어가 암탉의 엉덩이를 깨물지만, 오히려 닭에게 호되게 혼나고 쫓겨난다. 결국 여우는 달걀을 몰래 훔쳐 부화시킨 뒤 잡아먹으려 계획을 세우지만 어찌된 일인지 어느새 여우는 병아리들의 엄마가 돼 있다.

'빅 배드 폭스' 작가 벵자맹 레네 인터뷰 #2017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 #병아리 먹으려던 여우가 '엄마'로 변신 #엄마가 된 여우의 좌충우돌 육아기 #"주위 시선 대신 스스로 행복한지 생각하라" #오는 30일 애니메이션 통해 영화로 개봉

프랑스 만화작가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 벵자맹 레네 [사진 Vollmerlo]

프랑스 만화작가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 벵자맹 레네 [사진 Vollmerlo]

지난 15일 한국에서 출간된 프랑스 만화가 벵자맹 레네의 그래픽노블 '빅 배드 폭스' 이야기다. 벵자맹 레네는 2014년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작으로 오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 공동 감독으로 참여한 애니메이션 제작자이기도 하다.

2015년 1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빅 배드 폭스'는 만화임에도 프랑스에서 종합 부문 10위, 만화 부문 1위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지난해 세계 최대 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야수상'을 수상했다. '빅 배드 폭스'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2017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오는 30일에는 극장에서 개봉한다. 지난 21일 벵자맹 레네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병아리를 돌보는 여우라니. 다소 엉뚱한 이야기인 것 같다.
빅 배드 폭스는 편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여우라면 교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암탉은 연약할 것이라고 정해진 틀대로 생각한다. 주인공인 여우도 영리하고 카리스마 있는 동물로 비치길 원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바보 같다. 결국 여우는 스스로 잔인한 여우가 되는 것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따뜻함과 재미, 웃음, 적어도 작은 미소 정도는 전해주고 싶었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무엇에 신경을 썼는지 궁금하다.
여우가 작은 병아리를 돌보는 모든 장면 장면에 신경을 썼다. 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그동안 내가 지켜봤던 것들을 이 이야기 속에서 여우가 작은 병아리들을 돌보며 겪는 일들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건, 여우가 잔인한 맹수 대신 결국 병아리들의 엄마로 남은 것처럼, 어떤 고정관념이나 통념에 구애받지 말고 너 스스로 그걸로 행복하다면 단지 그 존재가 돼라는 메시지였다.
빅 배드 폭스 [사진 북레시피]

빅 배드 폭스 [사진 북레시피]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받는지.
나는 주로 아이들의 책이나 이야기, 우화를 좋아한다. 프랑스 시인이자 우화 작가인 라퐁텐(La Fontaine) 우화를 읽곤 했다. 디즈니나 루니 툰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상에서 내가 보아온 것들로부터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사실 이번 작품의 아이디어도 어릴 적 농장에 갔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병아리들은 첫 번째로 보는 사람을 엄마로 여긴다는 이야기였다. 이 얘기를 듣고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아직 내가 병아리들을 키우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상상해보곤 했다. 그때의 생각이 깊이 남아있었고, 결국 알을 훔쳐 부화시킨 뒤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여우와, 그 여우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병아리를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서 만화는 조금 가벼운 예술로 인식된다.
프랑스에는 그래픽노블 작가들이 굉장히 많고,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명작들도 많다. 그래픽노블은 단지 이야기를 해주기 위한 장치이자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이다. 나는 그래픽노블이 다른 장르에 비해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어릴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내 글 실력은 좋지 않았다. 차츰 나는 글보다는 그림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게 더 쉽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그래픽노블은 단지 하나의 언어다. 나는 다른 어떤 언어보다 이 언어로 얘기하는 게 좋다.
빅 배드 폭스 [사진 북레시피]

빅 배드 폭스 [사진 북레시피]

이야기 속 유머만큼 당신도 재미있는 사람인지.
나는 재밌는 사람은 아니지만 웃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 네가 누군가를 웃게 만들었을 때 그건 너와 상대방이 서로 교감했다는 뜻이다. 나는 웃음이 인생의 교훈을 전달해주는 멋진 도구라고 확신한다.
한국에 올 계획은 없는가.
이미 한국에 갈 기회가 두 번 정도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개인 사정으로 놓치고 말았다. 나는 한국 영화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 작품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래픽노블

통상 소설과 만화의 중간 형태를 일컫는 말로, '어른들을 위한 만화'로 불리기도 한다. 슈퍼 히어로 만화(코믹스)가 많았던 미국에서, 이와 차별화하기 위해 문학성과 예술성이 가미된 만화를 지칭하며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미국의 만화가인 윌 아이즈너가 1978년 처음 사용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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