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하나'와 '둘' 너머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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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정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아니 몰라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제국주의의 총칼 아래 민족의 생존을 보전하기 위해서, 전쟁의 포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제개발을 이룩해 먹고 살기 위해서, 남부럽지 않게 선진국 대열에 끼어보기 위해서.

이른바 '골수'라는 것이 생겨난 것도 그래서였지 싶다. '꼴보수'나 골수 빨갱이, 골수 신앙인, 골수에 맺힌 원한, 그리고 골초(?) 같은 것들 말이다. 하나만 아는 사람들과 그 하나가 진정한 하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추레하거나 숭고한 순례자의 모습으로 뒤를 잇는 지루한 악몽의 시절이 계속됐다.

반공웅변대회의 단골 참가자였던 고등학생 시절을 마감하고 10.26사태에서 12.12쿠데타로 이어지는 1970년대의 끄트머리에 대학생이 된 나 역시 예의 순례 대열로 사정없이 떠밀려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하나 뒤에 붙은 '만'이라는 조사 속에 이미 둘, 셋, 넷, 다섯이 암묵적으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은 거짓이며, 단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우기고 있을 따름이다.

젊은 시절의 나를 사로잡은 동시에 괴롭힌 명제는 바로 이 '우기면 된다'였다. 그것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캐치프레이즈인 '하면 된다'의 샴쌍둥이 같은 존재로서 이 땅에 태어났는데, 그 '하나'의 반대편에 자리잡은 '다른 하나'의 언저리에서 엉거주춤하던 나 역시 그 명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이 '골수'가 싫어졌다. 정작 자신은 골수답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왕이면 얼치기보다야 골수가 나으리라는 생각에 골몰했던 젊은 시절의 뒷모습을 밉살스럽게 돌아보기 시작한 것도 그 어름이었다.

하나와 둘 너머에 있는 숫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하면 된다'와 '우기면 된다'의 지평선 너머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셋, 넷, 다섯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어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적어도 공개적인 담론의 장에서는, 하나와 둘이 아닌 셋의 자리가 도무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나는 '하나'와 '다른 하나'의 화해 불가능한 대립들이, 대체로 구체적인 사람들 대신에 추상적인 다수를 내세우는 까닭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경우의 추상적인 다수란 실제로는 공허한 명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덧붙여둘 것은, 그리고 이 때문에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오늘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문제들이, 나 자신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하면 된다' 또는 '우기면 된다'의 업(業)이 역사적으로 오늘에 그늘을 드리운 데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와 '다른 하나'의 대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gray zone)를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 역시 '하나' 또는 '다른 하나'의 시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보다는 빨강과 파랑에 노랑을 더한 전통적인 삼태극의 이미지를 기억상실의 저편에서 살려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나와 둘이 점 또는 선이라면, 셋은 면인 동시에 넷이라는 입체로 들어가는 문이다.

단선적인 대립의 세계를 벗어난 입체적인 조화의 균형 세계에서만 대화와 평화와, 그리하여 미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에 차려진 육각형의 테이블을 지켜보며 새삼스럽게 배워가는 중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절박한 현실 자체이기도 하잖은가.

강영희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