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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이 만난 사람

말도 않고 안쓰럽게 쳐다보는 그런 시선이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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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장현아 마포장애인부모회 회장은 13일 "아이와 나의 감정이 깊이 밀착해 얘가 나인지, 내가 얘인지, 어떤 때는 내가 장애인이 아닌가, 그런 시선으로 주변을 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장현아 마포장애인부모회 회장은 13일 "아이와 나의 감정이 깊이 밀착해 얘가 나인지, 내가 얘인지, 어떤 때는 내가 장애인이 아닌가, 그런 시선으로 주변을 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는 아이와 하나가 된다. 아이가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내고, 우울하면 같이 우울해진다. 주위의 말 한마디에 아이보다 더 쉽게 상처를 받는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없다. 친구도, 친척도 멀어진다.아파도 말하지 않는다. 위로보다 상처만 남는 것이 두렵다.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13일 중앙일보로 찾아온 장현아(50) 씨는 씩씩했다.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인터뷰 내내 충혈된 눈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프레더-윌리증후군(PWS)인 이종민(17)군을 키우고 있다. 발달장애아 부모 300여 명이 참여한 ‘함께 가는 마포장애인부모회’(전국 장애인 부모연대 마포지회) 회장이다. 지난주에는 영화 ‘채비’를 단체관람했다.“시기적으로 반가웠습니다. 저희가 지난해 서울시에 정책을 제안했고, 얼마 전 강서구에서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러면서도 저렇게 ‘상위 1%’면 무슨 걱정이냐는 생각도 들었어요.”발달장애아 부모들은 인규(김성균)처럼 대화와 일상생활이 가능한 아이들을 ‘상위 1%’라고 부른다. 대개는 교육으로 나아지는 데 한계가 있다.“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면서 저희 삶을 모르는 비장애인들이 ‘저 가족도 애순(고두심)씨 같은 걱정을 하겠네’라며 지역의 한 일원으로 손잡아 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종민이가 장애라는 건 언제 아셨나요.
사실은 생후 6개월 만에 축 늘어지고 그래서 중환자실에 갔어요. 잘 못 빨고, 못 먹고, 탈수현상이 왔는데…. 2년 동안 원인을 몰라 중환자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전전했어요. 마지막에 서울대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더니 엄청난 거였어요. 프레더-윌리증후군이라고.”
놀라셨겠네요.
실감도 나지 않고, 눈물도 안 났어요.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종민이가 불편한 건.
언어 표현이 잘 안 됩니다. ‘엄마, 밥’ 이 정도…. 걷는 것도 다섯 살 때였어요. 물리치료하고…. 그 증후군 아이 중에서도 종민이가 더 느렸어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쳐다보고, 버스를 타면 쳐다보고… 말하지 않고 동정이나 안쓰럽게 쳐다보는 시선, 그런 시선을 폭력이라고 하잖아요. 사실 사회적 약자가 되면 더 배려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부터 입소를 거부당했어요. 저희도 사회의 일원이라 당연한 권리인데 아무 이의 제기도 못하고, 좋은 기관을 찾아 이사를 다녔어요.”
장현아 마포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어려움이 많지만 장애인 가족들은 아이들을 목숨만큼 사랑하고, 아이의 해맑은 미소로 정서적 지지를 받으면서 행복을 느끼고, 서로 삶의 용기를 주면서 살아간다"고 말했다.조문규 기자

장현아 마포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어려움이 많지만 장애인 가족들은 아이들을 목숨만큼 사랑하고, 아이의 해맑은 미소로 정서적 지지를 받으면서 행복을 느끼고, 서로 삶의 용기를 주면서 살아간다"고 말했다.조문규 기자

그러다 부모회를 알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것 같고,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종합청사·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 ‘이 ×같은 세상의 철창에 처박혀…’라는 노랫소리를 듣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이게 차별이구나. 부모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면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 얌전하던 장 회장의 얼굴에 갑자기 분노가 이글거렸다.

“제가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어디 가서 자식이 그런 대접을 받는 한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까.
자식이 없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자식이 존재 이유죠.”

장 회장은 꿋꿋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모도 많다. 지난해 부산의 김모(49) 경위는 고1 아들을 죽이고 자살했다. 이혼한 그는 하교 뒤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도우미는 한 달 104시간밖에 지원이 안 됐다. 2015년 여수에선 21세가 된 장애아를 맡길 곳이 없었던 홀어머니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2014년 광주에서는 36세 부부가 5세 아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에서는 이모씨가 13세 지체장애아 등 자녀 2명과 함께 세상과 이별했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지만 정부도 사회도 관심이 없다. 아파트값 떨어진다며 병원이나 학교가 들어오는 것도 반대한다. 정치인이 앞장선다.

“아빠도 직장 다니면서 힘들고, 집이라는 게 쉬어야 하는데 저도 위로를 받고 싶고… 비장애 가정이어도 그런 갈등이 있겠지만 장애 때문에 서로 지치고 여유가 없다 보니 이혼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이겨 냅니까.
그것도 자식인 것 같아요. 지금도 이 아이가 없으면 못 살죠. 아이에게는 엄마가 우주잖아요. 힘들지만 기쁨도 있어요. 감정 소통이 되고, 좀 느린 자식이지만 부모의 심정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요….”
장현아 마포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우리도 하루 하루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은 평범한 이웃"이라며 "특수교육, 주간보호로 분리하지 말고 조금 느리더라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조문규 기자

장현아 마포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우리도 하루 하루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은 평범한 이웃"이라며 "특수교육, 주간보호로 분리하지 말고 조금 느리더라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조문규 기자

그의 눈알이 다시 빨갛게 변했다.
PWS는 포만감을 잘 못 느낀다. 종민이는 자주 배고프다며 음식을 찾는다. 체지방 분해가 안 되고 근육 합성도 안 된다. 배가 나왔다.

“총체적 난국이죠. 아침에 먼저 일어난 종민이가 냉장고 문을 여는데 저도 모르게 ‘이종민!’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종민이가 깜짝 놀라면서 죄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식단을 관리해요. 남편이 귀가해도 종민이가 이미 밥을 먹었으면 잘 때까지 기다려요.”

종민이는 동네 어린이집을 다녔다. 동네에 ‘누구야, 안녕’ 하고 인사해 주는 친구가 생겨 좋았다.

“일반학교로 진학하니 어린이집 친구들이 지지자·지킴이가 돼 줘 좋았어요. 5학년 담임선생님은 종민이 덕분에 아이들이 순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 대개는 ‘주간보호센터’에 신청한다. 그러나 4~5년이면 나가야 한다. 아이는 덩치가 커지고, 왜소한 어머니는 감당이 안 된다. 아이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들어 여름에도 긴팔 옷만 입는 어머니도 봤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장애아가 어린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려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폭력이 나타나면 의사는 약을 권한다. 예전에는 과잉행동을 하면 행동치료라며 의자에 묶었다. 자꾸 무는 아이는 앞니를 뽑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아이 어머니일수록 우울증이 많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극한 상황에 몰리면 극단적인 선택들이 나온다. 장 회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인과 딸을 외출 보내 놓고 아버지가 아들과 동반자살했다는 기사가 났어요. 장애인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명백한 살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장 회장이 말한 사건은 2013년 서울 관악구에서 일어났다. 17세 아들은 옷을 찢고, 자해하고, 가족과 교사를 가리지 않고 때렸다. 이렇게 폭력성이 심하면 학교도 시설도 받아 주지 않는다. 결국 부모가 24시간 붙어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유서에서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해 달라고 장애인 부모들이 지난해 서울시에서 42일간 농성했다. 하루 2명씩 13일 동안 26명의 어머니가 삭발했다.

보호센터는 5년이면 나와야 하고 #폭력성 있으면 받아주지도 않아 #정치인이 앞장서 집값 떨어진다며 #부모는 먼저 죽고, 사회는 외면 #남은 자식 누가 돌봐주나 걱정 #아무 말 없이 안쓰럽게 쳐다보는 #그런 동정하는 시선이 더 폭력적

“영유아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의 몫으로… 부모들이 지쳐 가요.”

우리 사회가 함께 져야 할 책임을 어머니 혼자 일생을 희생하고 짊어지도록 강요하고 있다.

영화 '채비'에서 장애아들을 둔 애순(고두심 분) 씨가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뒤 아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 [사진 오퍼스 픽처스]

영화 '채비'에서 장애아들을 둔 애순(고두심 분) 씨가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뒤 아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 [사진 오퍼스 픽처스]

[S BOX] 발달장애아 엄마의 애끓는 소원 “아이보다 하루만 더…”

‘내가 우리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발달장애아 어머니들의 가장 큰 소원이다.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 그 이후가 걱정이다. 영화 ‘채비’에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애순 씨의 연기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영화에서 수용시설에 간 아들 인규는 “엄마, 여기 싫어. 집에 가” 하고 외친다. 멍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수용자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 그런 건 아니다.
수용시설도 다 받아 주지 않는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 경우보다 과잉행동·폭력성을 싫어한다. 엄마만 공격하는 아이도 있다. 위험한 동거를 해야 한다.
강화도 우리마을은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다. 자동화된 시설에서 콩나물·쌀빵·수경상추·달걀을 생산한다. 장 회장은 이곳 유찬호 신부로부터 부모 교육을 받았다.

“기존의 일터는 받아 주지도 않고, 문제가 생기면 데려가라고 전화하는 걸 자주 봤어요. 그래서 저도 만들려고요.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노인과 장애인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사는 마을도 시도되고 있다.

“좋은 모델이 많이 나온다는 희망을 가지다가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대형 수용시설도 위험합니다. 스페인에서는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임상시험을 해 문제가 됐거든요.”

화장도, 예쁜 옷도, 자기 이름도 포기한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걱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