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일관성 없는 전신 안희창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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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론이었던 소선거구제를 포기하고 중선거구제를 새로운 당론으로 채택한 13일의 민주당결정은 한마디로 「정치는 현실」이라는 말을 철저히 실감케 하는 것이었다.
이날 열린 회의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소선거구제 실시의 「부부성」을 여러모로 지적했다. 계층간의 대립을 격화시키고, 지방의원과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고, 특히 승산이 없다는게 이들 의원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어떤 의원은『이기는 싸움을 해야지지는게 뻔한 싸움을 왜 하느냐』고도 주장했다.
다른 의원은 『소선거구제가 당론으로 정해진바 없다』고까지 했다.
선거구가 없는 전국구의원 두어명이 소선거구를 옹호하고 나섰지만 그 소리는 들리는둥 마는둥 했다.
소선거구제가 「부가」하다는 이 같은 주장은 얼핏보면 나름대로 「명분」도 있고 이를 역설하는 의원들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뜯어보면 소선거구제에서는 당선이 어렵고 다시 당선되는 길을 찾자면 복수의 당선자가 나오는 중선거구제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론」일뿐이다. 일부 의원들은 과거 그들이 여야 동반당선이라고 그렇게 비난했던 현행 ]구2인제도 못할 바 없다고까지 서슴없이 얘기하고 있다.
결국 채택된 당론은 차마 현행제도는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1구2인제를 배격않기로 하고 「인구비례에 따른 중선거구제」를 택한다는 것이었다.『제1야당이 아니라 제1당이 목표』『신진엘리트의 과감한 영입』등 그동안 구호처럼 외쳐온 당지도부의 목표가 허구였음이 한 순간에 드러난 것은 물론이다.
정치가 현실인 이상 우선 살아남아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는 과정을 추구하는데도 한 정당으로서의 논리의 일관성과 명분·체면 정도는 있어야하는 법인데 민주당의 이번 전신은 이런 것들을 전혀 고려도 않는, 허겁지겁 하는 모습뿐이었다.
야당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하지만 이처럼 뿌리없이 표류하는 야당의 체질이나 생리는 이제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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