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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안 동맹파·자주파 갈등설 수면 위로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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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공개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3급 기밀문건의 유출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 근무하는 외교부 출신의 이모 행정관이라고 김만수 대변인이 22일 밝혔다.

청와대 내부가 기밀 유출의 진원지임이 확인된 셈이다. 당장 최고 권부 내의 허술한 보안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 계속되는 기밀문건 유출이 외교안보팀 내의 이념 갈등에 따른 주도권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석연찮은 발표=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이 행정관은 "업무에 참고하려 한다"며 1월 23일 외교부 후배인 부속실의 다른 이모 행정관에게서 지난해 12월 29일자 NSC 상임위 회의자료를 건네받았다.

회의자료를 갖고 있던 이 행정관은 1월 말 평소 알고 지내던 권모 전 청와대 행정관(현재 모 대기업 임원)과 최재천 의원을 모 호텔에서 함께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전략적 유연성이 화제에 오르자 이 행정관은 문건을 최 의원에게 보여주었다. 최 의원은 문건을 필사한 뒤 그 내용을 2월 1일 공개했다.

청와대는 보안규정을 위반한 이 행정관을 17일 청와대에서 대기발령시켰다. 곧 외교부로 복귀시키고 외교부 장관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중징계를 요청키로 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의 내부 지휘 책임도 묻기로 했다. 이 행정관은 "최 의원이 발표가 아니라 참고로 하기 위해 필사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만수 대변인은 "고의성은 없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 의원을 만나러 가며 굳이 문건을 소지하고 간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 행정관이 부속실의 외교부 후배에게서 문건을 건네받은 대목도 '조직적 유출' 여부를 따질 요소다.

하지만 청와대는 '단독 유출'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여당의원, 친노 공직자가 연루된 '집안 싸움'수준으로 상황을 봉합하려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급 기밀의 외부 유출이 법률위반 행위로 엄격히 다뤄져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 외교안보팀 내 이념 갈등인가=48세인 이 행정관은 1982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다른 일을 하다 88년 외시 22회로 뒤늦게 공직에 들어왔다.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 홈페이지에 많은 글을 기고하던 중 노무현 캠프의 눈에 띄어 당선과 함께 인수위에 파견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행정관이 미국에 치중해 온 우리 정부의 그간 외교 스타일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을 자주 내 주변과 충돌도 없지 않았다"고 했다.

뜻이 맞는 386세대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저자세 대미 외교'에 비판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그가 저자세 외교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전략적 유연성 문건을 소신에 따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게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민노당 노회찬 의원이 또다시 '청와대 문건' 내용이라고 인용하며 '전략적 유연성' 협상을 비판했다.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 간 논란이 해소되지 않는 한 문건 유출은 여전히 뇌관으로 남을 조짐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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