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방어 더 비싼데 속여 팔겠나”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1심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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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으로 표시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

TV서 ‘국내산 둔갑 판매’ 방영하자 #경찰이 몰카 찍어 검찰에 증거 제출 #법원 “허위 증명 못해” 86명에 무죄

15일 오전 10시5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형사23단독 명선아 판사가 주문을 읽자 방청석에선 박수가 터졌다. 출석한 피고인은 86명. 모두 노량진수산시장의 상인들이었다. 417호 대법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등 대형 사건 재판이 열리는 곳이다. 피고인이 많은 이 사건 선고 때문에 이날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구속 연장 관련 심문 절차는 한 층 아래 법정에서 열렸다.

상인회장 김용길(58)씨는 “중매인한테 방어를 샀던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을 전부 기소했다. 일본산 방어가 국산 방어보다 ㎏당 1000~2000원 정도 더 비싼데 왜 저희들이 속여서 팔았겠느냐”고 말했다. 일본산 방어와 국산 방어는 크기나 등 색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일반인이 구별하긴 어렵다. “물건에 차이가 없고 일본산 방어가 더 활발하다”는 것이 상인들의 평가다.

이 사건은 지난해 2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소비자들이 꺼리는 일본산 방어를 수산시장 상인들이 국내산으로 속여 판다는 내용을 방영해 시작됐다. 노량진수산시장의 관할서인 서울 동작경찰서가 수사에 나섰고, 담당 경찰관이 지인을 시켜 상인들 몰래 동영상을 찍어오게 했다. 손님인 척 여러 점포를 돌며 “원산지가 어디냐”고 묻는 영상은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였다.

그러나 명 판사는 이 동영상에서 상인들이 “국산이다”고 말한 것만 가지고 원산지를 허위 표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명 판사는 “영상에서 국산이라고 표시했다고 볼 만한 장면이 없고, 당시 점포 내 수족관에 방어 자체가 없던 상인들도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검찰의 약식명령 청구대로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103명에 대해 벌금 명령을 내렸지만 상인들이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이 열렸다. 혐의를 인정한 상인 16명에게는 지난 2월 벌금형이 선고됐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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