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운동화 신었잖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7일 상오 11시 제주교도소특별면회실.
15개월여만에 만나는 아버지와 두 남매. 꿈에도 잊은 적이 없고, 그래서 만나면 쌓였던 얘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 같았지만 막상 마주한 부정의 눈길에 모든 것이 녹아버린 듯 말문이 막힌다. 『아빠,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아 참, 이것 봐요. 새 운동화를 신었잖아요.』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말꼬리를 돌리는 문임양(16). 『삼중스님이 새 운동화 사주셨다. 높은 분들이 찾아와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아빠도 빨리 나올 수 있게 해주신대요.』
철부지 성훈군(12)도 어색한 분위기를 씻어 보려 자랑을 늘어놓는다.
낡은 운동화를 신었다고 학생들에게 놀림받는 어린 딸에게 새 운동화를 사주려고 이웃에 꿔준 돈 5천원을 받으려다 언쟁 끝에 살인을 하고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유지동씨 (42·중앙일보 구랍24일자 보도)는 어린 남매와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양신순씨(36·미용업·제주시 도남동 960의3)가 각계에 낸 애절한 호소로 6일 밤 제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의지할데 없는 어린것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펴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어린 남매를 무릎에 앉힌 유씨의 감사의 말에 양씨는 『자식 기르는 어버이마음은 마찬가지예요. 올해는 꼭 좋은 일이 있겠죠』라고 받았다.
변호사접견실에서 이루어진 2O여분간의 특별면회를 마치고 아쉬움을 안고나서는 두 남매에게 교도관의 한마디가 와 닿는다.
『이제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제주=김형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