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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안의 팬터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7호 34면

사직서국어사전辭職書; 사직청원서-맡은 직무를 내놓고 물러나게 해 줄 것을 청원하는 서류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 여자의 사전그 여자를 비롯한 모든 직장인들의 팬터지. 현실이 되었을 땐 잠깐동안 통쾌하지만 오랫동안 씁쓸한 것.



사표를 썼다. 다행히 권고 사직은 아니었고, 불행히도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표가 수리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일단은 홀가분했다. 사실 사표를 내는 순간만큼 묘하게 통쾌한 일도 없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에 안다. 그때만큼은 ‘내가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야’라는 자기도취에 잠깐 깊이 빠져볼 수 있을 때다.

당장 백수 생활이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시간이 많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꼭 그렇게 흔해빠지게 썼어야 했을까.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하고자 합니다’. 이건 솔직히 내 일신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지 않은가. 분명 사표를 쓰게 되기까지는 누구나 미웠던 상사와 마음이 맞지 않았던 동료와, 뭔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일, 이런 게 맞물리는 ‘나 이외의 문제’가 분명 있지 않나.

그런 솔직함이 아니라면 미래의 인생 계획을 멋지게 나열하며 ‘이렇게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라며 글 쓰는 사람답게 멋진 퇴사의 변을 남기고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 그러나 더 솔직히 나의 새로운 꿈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어봐서 알지만, 이럴 땐 간결한 게 백번 낫다. ‘그동안 도와주신 동료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라고 쓴 쪽지와 케이크에 남긴, 전형적이지만 예의 바르고 싶었던 내 진심을 기억하자.

시간이 많아지면 연락도 많이 온다. “또?” “어쩌려고? 나이 오십에?”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이제 이런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에 “하하 걱정 마세요. 뭐 어떻게 되겠죠”라며 대충 눙치며 전화를 끊을 줄은 알게 됐다. 다행히 “그럼 밥이라도 한 끼 사줄 게 나와”라는 소리라도 들으면 절대 사양을 안 하는 것도 사직 경험자의 노하우다.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돌아오는 길은 씁쓸하다. 하필 가을이라 바람은 횡 하니 불어대고 낙엽들이 뒹군다. 평생 사표 한번 써보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어찌 됐든 ‘일만 시간의 법칙’을 훌쩍 채우고 전문가의 경지로 뛰어 오른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진다. 혹은 몇 번의 사표를 쓰면서 더 높은 자리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던 유능한 사람들도 떠오르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사표를 쓰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요즘은 ‘퇴사 준비생’이란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하는 퇴사가 대세라는데, 나의 퇴사는 왜 늘 이럴까.

가장 아쉬운 건 이제 ‘사표의 환상’을 그리는 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사표는 어쩌면 영원한 팬터지다. 그걸 그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꼭 해야만 하는지, 어떤 일을 꼭 견딜 수 없는지, 아니 견디지 않아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진지하게 그려보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지켜내야 할 것, 세상에서 이뤄내야 할 것들을 위해서는 그 팬터지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 그것만 낸다면 나는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사표를 내고 여행까지 다녀왔을 때 내가 잠깐 팬터지의 주인공이 된 듯도 했다.

하지만 혼자일 때 더 잘 들리는 은행 잔고와 카드 결제를 알리는 문자메시지 같은 것들이 이제 더 이상 현실이 되어버린 환상을 어찌할 거냐고 재촉하듯 울린다. 이제 이런 경험을 몇 번 해봤던 걸 바탕으로 다시 마음을 추슬러본다. 아득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사표의 환상’ 속에 품었던 진심만큼은 놓치지 말자고.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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