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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이긴 영광이 더 값지다|대입 낙방생에게 주는 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도서관 서고를 뒤지니까「지하직재」(시가나오야) 의 책이 눈에 띄었다. 학생시절 몸이 아파서 1년 동안 휴학하고 있을 때 나는「로맹·를랑」과「지하」두 사람의 문학작품에 많은 감명과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옛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분히 글을 읽을생각으로 그 책을 대출하였다.
우선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궁금하여 권미에 첨부된 연표부터 살펴보았는데, 거기서 나는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일본에서「소세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지하」가 중학교 4학년에 진학할 때와 중학교를 졸업할 때에 두 번 낙제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반가운 사실이어서 집안식구는 물론 최근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게 된다.
시험에 낙방한다는 자체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절망을 느낄 만큼 심각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 쓴「지하」의 예가 아니라도 시험에 낙제한 사람으로 찬란한 엄격을 올려 인류에게 광명을 던져준 많은 원인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로 활약하고 장관을 지낸 분이 학생시절에 낙제한 경험을 회상한 글을 담아서 『낙제생』이라는 제목이 붙은 수필집을 낸 일이 있다. 프랑스가 나은 위대한 수학자·물리학자였고 사상가였던「앙리·포앙카레」는 수학시험에 0점을 방은 일이 있다고 들었다.
입학시험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유일절대 적인 척도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발전시켜야할 능력중의 일부분에 불과한 지력의 우열을 가리는 척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력에는 직관적 능력, 창조적 사고력, 판증법까지도 포함한 논리적 사고력, 상상력, 기억력등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오늘의 시험제도에서 과해지는 문제들은 기억력을 평가하는데 치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객관적 평가라는 이름 밑에 작성된 문제들은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하겠다. 그런 평가방법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해서 금년부터 대학입시에는 주관식 문제들이 근소하지만 가미되었다. 그리하여 작년 같으면 합격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주관식 문제가 들어갔기 때문에 낙방한 학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학력을 굉장히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사회다. 이름 있는 학교를 나오면 무조건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무능하고 쓸모 없는 사람으로 단정하려 든다. 그런 상황하에서는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거나 입시합격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공부에 골몰한 학생은 자기의 뜻을 실현하지 못하고 영영 사회의 그늘에서 지내게 되기 쉽다.
학력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 풍토는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 사람의 경우 가급적 자기의 능력에 맞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학업을 연마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일이다.
만일 불행하게도 자기의 실력에 겨운 학교를 잘못 선택했거나, 지금까지 공부를 덜했기 때문에 낙방했다면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공부하는 방식을 재검토하여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부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실패한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은 대개의 경우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에는 자기를 적절히 인도해줄 수 있는 사람과 서적의 힘을 빌어 옳은 길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패에 당면하여 가장 옳지 않는 태도는 첫째로 자포자기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자기도피 하여 안이한 길을 택하는 것이며, 셋째로는 일시적인 낙망이 가신 뒤에 개과천선의 노력이 없이 다시 전과 같은 생활을 타성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독일의 천재적인 군인이었던「몰토케」는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를 갖고 보고 있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의 성공의 척도다. 그가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했는가, 물러섰는가, 또는 더 용기를 내서 전진했는가, 그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앞에 언급한「포앙카레」는『영관만 바라보면서 그 날을 허송하는 것이야말로 꾸짖어 마당한 일이다』고 총고하고 있다. 실로 낙방이 걱정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은 낙방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낙방에 의기소침하여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할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근년에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고 있는 나는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미 고인은 정신일도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오늘날 위대한 자연과 학자들 중에서 기를 연구하고 정신집중, 강한 의지의 실천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낙방한 학생들은 한두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서야 한다. 영국의 문인 「골드스미드」가 말했듯이『우리들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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