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일 한국e스포츠협회 자금유용 사건에 대한 첫 언론 보도 이후 사흘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난 셈이다. 그는 7일 청와대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환영만찬 초청 대상이었지만 불참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전 수석의 의원 시절 비서관이었던 윤모(34)씨를 제3자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7월 롯데홈쇼핑이 한국e스포츠협회에 낸 후원금을 대가성이 있는 ‘제3자 뇌물’로 보고 있다. 예결위 회의 정회 도중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전 수석은 거취를 둘러싼 물음에 굳은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임종석, 전수석 관련 “예단 안 돼” #검찰, 옛 비서관들 녹취록 확보
- 비서관들이 오늘 구속됐는데 입장은.
- “…”(할 말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음)
- 정치권으로 수사가 넘어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잘 모르는 일이다.”
- 거취에 대한 고민은 없나.
- “…”
옆에 있던 정무수석실 관계자가 “다음에 하시죠. 저희 입장은 저번에 발표한 그대로”라며 양해를 구했다. 기자가 “불법 개입한 적이 없다는 기존 입장에 바뀐 것은 없느냐”고 묻자 전 수석은 “수고하세요”란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예결위에서 전 수석은 의원들 질의에 거침 없이 답변하던 평소 때와 다소 달랐다. 목소리 톤은 낮았고 답변을 하다 말이 잘릴 때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시종 로키(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전 수석은 “장관급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의 공문을 사회부총리에게 보내 ‘적폐청산TF’ 구성을 지시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는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지적에 “‘지시’ 공문이 아니라 ‘협조요청’ 공문이었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공문서 남발은 자제하겠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전 수석 거취는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거론됐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전 수석이) 정권에 부담 주는 면이 있는데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민경욱 한국당 의원 질의에 “아직 예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이번 사건이 전 수석과 청와대 내 ‘86 출신’의 갈등에서 불거진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럴 리가 있느냐”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에서 참고인이든 피의자든 소환을 해야 청와대도, 본인도 공식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피의자면 당연히 수석직을 내려놔야겠지만, 다른 경우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결백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권에선 검찰 칼끝이 전 수석을 향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율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처음부터 검찰 타깃은 전 수석”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전 수석 비서관 출신 윤씨 등의 금전거래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관련된 다른 사건의 관계자를 조사하다가 이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또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이 당시 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이었던 전 수석을 만나게 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여권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사전에 검찰 수사 상황을 몰랐다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얘기를 나눴는데 ‘우리가 솔직히 검찰에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과거 대검→법무부→민정수석실로 이어지는 지휘보고 채널인 ‘서초동 파이프라인’이 현 정권에선 폐쇄됐다는 얘기다.
현일훈·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