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보좌진 구속 뒤 국회 나온 전병헌, 입장·거취 거듭된 질문에 묵묵부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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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일 한국e스포츠협회 자금유용 사건에 대한 첫 언론 보도 이후 사흘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난 셈이다. 그는 7일 청와대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환영만찬 초청 대상이었지만 불참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전 수석의 의원 시절 비서관이었던 윤모(34)씨를 제3자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7월 롯데홈쇼핑이 한국e스포츠협회에 낸 후원금을 대가성이 있는 ‘제3자 뇌물’로 보고 있다. 예결위 회의 정회 도중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전 수석은 거취를 둘러싼 물음에 굳은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임종석, 전수석 관련 “예단 안 돼” #검찰, 옛 비서관들 녹취록 확보

비서관들이 오늘 구속됐는데 입장은.
“…”(할 말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음)
정치권으로 수사가 넘어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잘 모르는 일이다.”
거취에 대한 고민은 없나.
 “…”

옆에 있던 정무수석실 관계자가 “다음에 하시죠. 저희 입장은 저번에 발표한 그대로”라며 양해를 구했다. 기자가 “불법 개입한 적이 없다는 기존 입장에 바뀐 것은 없느냐”고 묻자 전 수석은 “수고하세요”란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예결위에서 전 수석은 의원들 질의에 거침 없이 답변하던 평소 때와 다소 달랐다. 목소리 톤은 낮았고 답변을 하다 말이 잘릴 때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시종 로키(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전 수석은 “장관급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의 공문을 사회부총리에게 보내 ‘적폐청산TF’ 구성을 지시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는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지적에 “‘지시’ 공문이 아니라 ‘협조요청’ 공문이었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공문서 남발은 자제하겠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전 수석 거취는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거론됐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전 수석이) 정권에 부담 주는 면이 있는데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민경욱 한국당 의원 질의에 “아직 예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이번 사건이 전 수석과 청와대 내 ‘86 출신’의 갈등에서 불거진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럴 리가 있느냐”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에서 참고인이든 피의자든 소환을 해야 청와대도, 본인도 공식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피의자면 당연히 수석직을 내려놔야겠지만, 다른 경우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결백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권에선 검찰 칼끝이 전 수석을 향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율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처음부터 검찰 타깃은 전 수석”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전 수석 비서관 출신 윤씨 등의 금전거래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관련된 다른 사건의 관계자를 조사하다가 이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또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이 당시 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이었던 전 수석을 만나게 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여권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사전에 검찰 수사 상황을 몰랐다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얘기를 나눴는데 ‘우리가 솔직히 검찰에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과거 대검→법무부→민정수석실로 이어지는 지휘보고 채널인 ‘서초동 파이프라인’이 현 정권에선 폐쇄됐다는 얘기다.

현일훈·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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