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안현수가 금메달을…"

중앙일보

입력

목동아이스링크의 빙상코치 박완근(39)씨는 14년전 코흘리개 안현수를 지금도 생생이 기억한다.

안선수가 이 빙상장을 처음 찾은 것은 명지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학교 정식 교과 과정 속에 포함된 빙상 수업을 위해 급우들과 함께 왔다.

박코치는 키가 작고 깡마른 이 어린이가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워낙 잘울어 울보라고 했습니다. 야단 치는 것은 고사하고 제 인상만 조금 굳어져도 울음보가 터져 곤란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스케이팅만은 일품 이었지요. 얼굴은 눈물에 콧물이 범벅이 됐어도 몸놀림은 날렵했고 자세도 깔끔했습니다."

안선수는 불과 석달만에 다른 아이들이 1년이 넘게 걸려 배울 스케이팅 기술을 다 배웠다고 한다. 그 재질에 감탄한 박씨는 어린 현수를 빙상선수의 길로 인도해 목동링크에서 줄곳 그를 가르쳐왔다.

일취월장 기량이 늘었던 안선수는 2002년 인근에 있는 신목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해 미국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에 출전했으나 경기 중 미국의 안톤 오노와 부딪히는 사고로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 그러나 13일 이탈리아 토리노올림픽 쇼트트랙 1500m 경기에서 마침내 첫 금메달을 따냈다.

목동링크는 그 안현수 선수가 스케이트를 시작하고 연습과 경기를 위해 제집처럼 드나들며 젊은 시절의 꿈을 바친 곳이다. 안현수 선수뿐 아니다. 김기훈.이준호.전이경.채지훈.김동성.고기현 등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중 목동링크와 인연을 맺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목동아이스링크가 겨울올림픽 금메달의 산실이지요. 이곳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금메달도 없었을 것입니다."

목동링크에서 빙상 코치로 재직 중인 올림픽 4관왕 김기훈씨는 말했다.

안현수 선수에 이어 토리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호석 선수는 유아 때부터 목동링크에서 스케이트를 배우고 목동에서 학교를 다닌 목동아파트 7단지 주민이다.

목동아이스링크는 80년대 서울시가 조성한 목동 신시가지의 기반 시설의 하나로 89년 완공됐다. 가로 30m, 세로 61m 규격의 빙판과 5000석의 관중석, 그리고 지하에 같은 규격의 연습용 빙판까지 첨단 시설을 갖췄다.

"개장 당시 우리나라에는 빙상 경기를 위한 국제 규격의 실내 빙상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목동링크는 완공 직후부터 우리나라 겨울스포츠의 요람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

개장때부터 이곳에서 일해 온 이창근 경기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쇼트트랙을 비롯, 아이스하키, 피겨 스케이팅 등 겨울 스포츠의 종목의 수많은 국제.국내 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또 빙상장이 들어선 이후 신목 중.고등학교, 목동 중학교 등 이 지역의 각급 학교들이 줄줄이 빙상팀을 창단했다. 이 지역 학교들은 각종 국내.외대회에서 뚜렸한 성적을 거둬 목동 지역이 우리나라 빙상스포츠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안현수와 이호석은 신목고 출신이며 2002년 여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고기현은 신목중학교를 졸업했다.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인 목동 링크는 아이스쇼등 공연예술의 무대로, 또 지역 주민들의 체육 공간으로도 인기가 높다.

이창근씨는 목동 빙상장에는 하루 1천여명의 빙상동호인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내장객은 4~5세의 어린이들부터 세칭 실버 세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걸쳐 있다고 한다.

10년째 이 빙상장에서 스케이팅을 즐긴다는 목동아파트 6단지 주민 정모(53)씨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이같은 시설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인근 현대 공인중개사 사무소 ***씨는 목동링크가 지역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라고 말했다. 목동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강남에 버금갈 정도로 차별화 될 수 있는 것도 목동링크와 같은 시설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목동아이스링크의 강신홍 사장은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 목동 링크가 앞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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