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사이, 계급장 뗀 두 작가의 문학·인생 끝장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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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
데이비드 실즈, 케일럽 파월 지음, 김준호 옮김, 이불, 1만5000원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JTBC 예능 프로 '썰전'을 떠올리게 되는 책이다. 두 남성 소설가가 계급장 떼고 가드 내리고 어떤 성역이나 금기도 없이,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나 배려조차 없이 팽팽하게 입씨름을 벌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작가는 10여 년 전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웠던 스승과 제자 사이다.
 국내에도 소개된 소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 데이비드 실즈(61)와 아직 무명인 그의 제자 케일럽 파월(49) 두 사람은 '숙박 썰전'을 기획한다. 3박 4일간 미국 북서쪽 워싱턴 주의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무제한, 무한정 토론하자고 의기투합한다. 오가는 여정까지 숙박 썰전의 전 과정을 VDR(디지털 녹화기)로 촬영한다. 그 방대한 녹취록을 정리한 게 이 책이다.
 두 사람은 약속한 대로 모든 걸 화제에 올린다. 스승은 말 더듬는 증상 때문에 괴로웠던 '흑역사'를 털어놓고, 제자는 마약·동성애 체험은 물론 정신병원 입원 경력까지 고백한다. 자신들 얘기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가족 병력, 애증으로 얼룩진 관계 등 껄끄러운 가족 얘기를 거쳐 시시콜콜 수많은 동료 작가와 지식인, 그들의 작품, 거창하게는 자본주의나 사이코패스 같은 체제나 사회현상까지 도마에 올린다.
 무질서해 보이는 둘 사이의 난타전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은 인생과 예술이라는, 근본적이며 영원한 화두다. 둘의 대화는 삼천포로 빠졌다가도 삶과 예술로 되돌아온다. 둘의 모험적인 기획이 그럴듯해진 건 삶과 예술에 대한 두 사람의 극명한 입장차 때문이다. 모더니스트인 듯한 스승 실즈가 아무리 현실이 강렬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걸 단순히 소설 속에 재현해서는 훌륭한 예술에 미달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없이 진지한 제자 파월은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을 파고들어야 진짜 예술이라고 항변한다. 영문 원서 제목은 그런 둘의 기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I Think You're Totally Wrong: A Quarrel'. 한글판 제목은 보다 부드럽게 각색한 결과다. 하지만 의미가 없지도 않다. 책 후반부, 두 사람은 삶과 예술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밋밋한 초반을 넘어서는 게 관건이다. 꼼꼼히 읽으면 두 사람이 흘린 피가 곳곳에 흥건하다. 번역이 매끄러워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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