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공감의 트럼프 방한 … “힘을 통해 평화 지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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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박2일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굳건한 한·미 동맹에 대한 믿음을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어제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를 따지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방한 중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이 걸림돌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과 국회 연설에서 돌출발언을 쏟아내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우려도 지울 수 없었다.

인상적인 국회 연설, 신뢰 강화에 한몫 #위안부 할머니 포옹으로 한국 손 들어줘

하지만 트럼프는 어떤 장면에서도 양국의 우호적 분위기를 망칠 이야기는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기상 악화로 돌아오긴 했지만, 어제 오전에는 예정에 없던 비무장지대(DMZ) 전격 방문을 시도했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기 위해 성의를 다한 것이다.

그의 국회 연설은 이번 동북아 순방의 백미였다. 트럼프는 연설 앞부분을 전통적인 한·미 간 우호와 한국의 성공 신화를 강조하는 데 썼다. 그는 “한국이 성공할수록 더 결정적으로 김정은 체제 중심의 어두운 환상에 타격을 가하게 된다”며 “번영하는 한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독재체제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선언했다. 한반도 정세의 본질을 이렇게 정확하게 간파한 외국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트럼프는 아울러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약속과 함께 북한을 향해서는 절대 오판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는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겠다”며 “북한이 과거 미국의 자제를 유약함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오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과거 행정부와 매우 다르니 과소평가하지도, 시험하지도 말라”고 덧붙였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북 경고다.

트럼프는 감정적 어투로 일방적 주장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제 국회 연설에서 보인 모습은 달랐다. 차분한 태도로 남북한의 구체적 실상을 조목조목 짚어 내려갔다. 북한의 비극적인 인권 탄압 실태를 나열하며 깊은 공감을 불렀다. 한반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생각보다 훨씬 깊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순방에서 보인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고개 들었던 미국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는 데 큰 몫을 했다. 그간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미 본토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공격당하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지켜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7일 청와대 만찬장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한·일 간에 끊임없이 제기돼 온 위안부 논란에서 보편적 인권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라면 일부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 차량이 지나갈 광화문광장 앞 차도에 종이컵과 물병 등을 던져 갈 길을 막았던 것이다. 트럼프 일행이 반대 차로를 이용해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방문한 손님, 그것도 혈맹의 대통령에게 이런 짓을 한 것은 유감이다.

이번 트럼프 방한으로 한·미 양측이 얻은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로서는 철통같은 한·미 동맹을 과시하는 동시에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는 100억 달러 이상의 첨단무기를 팔았다고 트위터로 자랑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예상을 깨고 평택 캠프 험프리로 내려가 트럼프 대통령 일행을 맞았고, 어제는 비무장지대(DMZ)에 미리 가서 기다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제 양국은 ‘윈-윈’으로 끝난 이번 순방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신뢰를 쌓아 북핵 위기에 흔들림 없이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