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은 왜 공무원만 늘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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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은 공공부문에서 81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 별도로 지난달 25일 고용노동부는 853개 공공부문 비정규직(20만5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공공 일자리 창출에 매달린 정부를 보면서 이현순 두산그룹 최고기술책임자(CTO·부회장)가 외국계 항공사 한국지사장과 나눴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지사장은 그에게 “향후 10년 동안 동북아·동남아에서만 7만 명의 파일럿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항공 교육 인프라가 훌륭한 한국이 여기 뛰어들면 최소 3만5000여명의 조종사를 양성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내놨다. 이 지사장은 “이렇게 손쉽게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데, 왜 한국은 공무원만 늘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단순히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라면 해법은 매우 쉽다. 한 사람이 할 일을 둘로 쪼개면 된다. 실제로 정부는 노동 시간을 단축해서 최대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구상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일단 막대한 비용이 든다. 또 노동 시간 감소는 임금 감소로 이어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연간 노동 시간이 52시간 감소하면 임금은 12.7% 줄어든다.

모든 걸 차치하고 100만 공무원을 양성하면 과연 실업난이 해결될까. 이현순 부회장은 두산그룹이 제조업에 스마트공장을 도입했던 경험도 들려줬다. 그는 “한국 모든 공장이 스마트 공장으로 바뀌면 대략 400만명의 단순 노동자가 실직한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말했다. 공무원 100만명을 뽑아도 일자리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자리 창출은 ‘목적’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다. 그렇다면 싫든 좋든 일자리 창출의 근본적 해법은 기업이 쥐고 있다. 물론 정부는 공공기관 일자리를 민간 기업 일자리의 ‘마중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자리 로드맵에서도 공공 일자리를 민간으로 확산하는 ‘연결고리’는 빠져있다. 일자리 창출 기업에 세제·금융 혜택을 제공하고, 공공조달 입찰 시 혜택을 주는 수준이 고작이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주체인 재계에 귀부터 열어야 한다. 이현순 부회장은 “두산그룹도 당장 필요한 사람은 많은데 이런 인력을 채용할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창출하고자 하는 일자리와는 다른 분야에서 기업은 여전히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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