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위탁모 된 하리수 "엄마 사랑 알겠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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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이었다. 당시 모든 여자 연예인의 꿈인 화장품 광고 모델로의 화려한 신고식을 한 그녀는 정말 방송계의 핫이슈였다. 그래서 지은 이름도 '핫이슈=하리수'아니던가. 때마침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존재감만큼이나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방송에서 '엄마'가 한번 되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정말 놀랐죠. 그런데 진짜 여자가 되고 싶은 것만큼 진짜 엄마도 되고 싶었거든요.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기에 고민 끝에 어렵게 결정했습니다."(하리수)

그래서 찾은 곳이 홀트 아동복지회. 해외에 입양될 아이의 위탁모가 되어 한시적 엄마체험을 하기로 했다. 요즘이야 결혼 안 한 연예인들이 위탁모를 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당시엔 선정적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과연 아이를 위해, 그녀를 위해 잘하고 있는 것인가 반문하기를 수차례. 그런데 더 큰 장벽은 바로 위탁모의 까다로운 조건이었는데.

"무엇보다 아이의 양육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3일 동안 아기 돌보기 자원봉사부터 했어요. 그래도 저 혼자는 부족해서 당시 딸로서 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 어렵게 위탁모 심사를 통과했죠."

그런데 이제와 새삼 밝히는 것이지만 그녀는 보모들도 인정할 정도로 아기를 너무 잘 봤다. 방송을 위해서는 어설프고, 어눌하고, 어색한 엄마모습이어야 하는데 마치 애 셋은 훌쩍 키워낸 것처럼 울던 아기도 그녀 품에만 안기면 거짓말처럼 금세 잠이 드는 것 아닌가.

"원래 아기를 좋아했고, 조카들도 많이 봤어요. 그럼에도 아기 돌보면서 힘든 것이 있었다면 스케줄 때문에 아기를 두고 나갈 때 눈에 쿡쿡 밟히는 것, 그리고 엄마와의 갈등이 가장 컸죠."

한동안 따로 떨어져 살다가 아기 때문에 다시 함께 살게 된 하리수 모녀. 덕분에 오랜만에 엄마의 잔소리도, 딸의 투정도 늘어만 갔는데.

"제가 원래 아침밥을 안 먹는데 어느새 엄마가 한 상 차려 놓으셨더라고요. 그날도 입맛 없어서 굶었어요. 그런데 아기가 깨서 울기에 얼른 분유 타서 먹였더니 갑자기 엄마가 서럽게 우시는 거예요. 저보고 아기 우유 먹일 줄은 알면서 왜 엄마 마음은 몰라 주냐고. 당신도 그동안 자식에게 밥 한 끼 제대로 지어 먹이고 싶으셨다며…."

엄마는 오래도록 참았던 깊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딸은 엄마의 사랑만큼이나 소복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자신은 물론 어머니를 위해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2주 동안 진행된 위탁모 프로젝트 '하리수의 엄마 되기'는 20년 동안 알지 못했던 그녀 어머니의 모습이, 마음이 되어 본 것이었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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