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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개항기 인천에 조성된 ‘일본풍 거리’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근대화의 관문 역할을 했던 인천에는 '차이나타운'만 있다고?
아니다.
‘일본풍거리’와 ‘일본은행거리’도 있다가 정답이다.

1880년대 개항당시 건물들 남아 있어 #당시 청·일 조계지, 일본식 건물 많아 #구청도 건물 외벽 일본풍으로 경관 조성 #'일본풍거리'로 소문나면서 관광객 늘어 #일본 제1,제18, 제58은행 건물도 보존 #개항 당시 일본인들 많아 금융활동 활발 #당시 '일본은행거리'로 알려져 최대 상권 #차이나타운·동화마을 연계해 발길 이어져

지난 6일 오후 인천시 중앙동 중구청 앞. 구청을 등지고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일본식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 아래쪽을 걷다 보면 일본 옛 도심을 걷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물론 건물 안쪽까지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중구와 지역 주민들이 낙후된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 건물 외벽 경관만 일본풍으로 바꾼 것이다.

인천시 중구청 앞 건물 외관을 일본풍 경관으로 바꿔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외벽 경관이 일본식으로 된 상가들. [사진 임명수 기자]

인천시 중구청 앞 건물 외관을 일본풍 경관으로 바꿔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외벽 경관이 일본식으로 된 상가들. [사진 임명수 기자]

전 세계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일본식 경관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중구청 주변이 1880년대 개항시대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청·일 조계지(租界地)였기 때문이다. 조계지는 개항장에 외국인들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 양식의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개항 초기 인천에 세워진 주택들은 점포가 함께 딸린 목조주택으로 마찌야(町家·2층 높이의 일본전통 도시주택)와 나가야(長屋·일본식 연립주택으로 1층 주택)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외벽 경관을 일본식으로 꾸민 상가들 사이로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외벽 경관을 일본식으로 꾸민 상가들 사이로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일본풍 느낌이 나다보니 인근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요즘 들어 조금씩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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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왔다는 김신혜(34·여)씨는 “인근 관광지에 왔다가 일본풍 거리가 있다는 말에 찾아왔다”며 “비록 거리가 짧고, 외관 만 일본풍이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이색적인 분위기가 나 좋다”고 말했다.
함께 온 최유정(34·여)씨도 “실제 일본거리에 온 것처럼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는 것 같다. 주변이 생각보다 특색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외벽 경관을 일본식으로 꾸민 상가들 옆으로 나 있는 청·일 조계지 쉼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외벽 경관을 일본식으로 꾸민 상가들 옆으로 나 있는 청·일 조계지 쉼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이곳에 일본풍 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블록만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일본은행거리’도 볼 수 있다. 일본인을 위한 일본 은행들도 하나씩 생겨나면서 ‘일본은행거리’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순서대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맨 처음 허가받은 은행을 일본 제1은행, 그 다음은 일본 제2은행 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인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현재는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인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현재는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인천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은행은 일본 제1은행이다. 사실상 한국 최초의 근대적 금융기관이었던 셈이다. 1883년 일본제1은행의 부산지점 인천출장소가 개소했다. 이후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했다. 건물은 당시 지어진 그대로 보존돼 있다.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인천 개항장의 초기 모습과 생활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 제1은행의 대형 금고와 철문, 작은 금고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좌우대칭 절충주의 양식의 서구식 건축물로 웅장함을 보인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돼 있다.

1890년 우리나라에 진출한 두번째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현재는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1890년 우리나라에 진출한 두번째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현재는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일본 제18은행이 1890년 인천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두 번째 은행이 됐다. 이 은행 건물은 조선식산은행, 한국흥업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됐다. 현재는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조성돼 근대건축물을 관람할 수 있다. 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됐다. 목재 트러스에 일식 기와로 모임지붕을 하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892년 인천 전환국에서 주조되는 신화폐 교환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 제58은행이 세번째 은행이다. 프랑스풍 벽돌집 건축물로 오르내림식 창문과 벽체, 기둥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시 유형문화재 19호로 지정된 상태다. 현재는 중구요식업 협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세번째 은행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 [사진 중구청]

우리나라 세번째 은행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 [사진 중구청]

또 한국 최초의 공공종합문학관인 한국근대문학관도 볼거리다.
문학관은 19세기 개항장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1888년 신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우선주식회사 건물은 1904년 일본 병참사령부로 쓰이기도 했다. 현재는 인천 아트플랫폼 아카이브로 활용되고 있다.

전국 최초의 공공종합문학관. 19세기 개항장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사진 임명수 기자]

전국 최초의 공공종합문학관. 19세기 개항장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사진 임명수 기자]

특히 개항 당시와 1930~40년대 지어진 13개의 붉은 벽돌의 창고 건물들은 예술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작가들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개항당시와 1930~4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의 창고들이 예술과 창작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 임명수 기자]

개항당시와 1930~4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의 창고들이 예술과 창작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 임명수 기자]

가족과 함께 찾은 최찬우(45)씨는 “과거 학창시절 많이 왔던 곳인데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낙후된 이미지로만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작은 일본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개항당시와 1930~4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의 창고들이 예술과 창작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 임명수 기자]

개항당시와 1930~4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의 창고들이 예술과 창작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 임명수 기자]

중구청 관계자는 “일본풍거리는 월미문화의거리를 거쳐 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을 연계한 관광코스”라며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도시재생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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