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창원터널 화물차는 '살인무기'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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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내셔널부 기자

위성욱 내셔널부 기자

“어떻게 그런 ‘살인 무기’를 싣고 도로를 달릴 수 있었는지···, 어처구니없는 사고의 진실을 꼭 밝혀야 합니다.”

지난 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창원터널 앞에서 5t 화물차 폭발·화재 사고로 스물세 살 꽃다운 딸을 잃은 배모씨. 그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통탄했다.

그의 딸 등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참사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반대편 차로에서 달리던 화물차가 중앙분리대와 부딪힌 뒤 기름통들이 폭탄처럼 건너편 차선 차량 위로 우수수 떨어질 거라고 꿈에라도 생각했을까.

이번 사고는 대형차량의 관리 부실에서 빚어졌다. 사고를 낸 화물차는 윤활유와 방청유(기계가 녹스는 걸 막는 기름) 통 196개를 싣고 출발했다. 무게만 7.5t에 달했다. 화물차는 차 무게의 110%인 5.5t까지 화물을 실을 수 있는데 제한 기준을 크게 어겼다. 또 뚜껑 없는 적재함에 위험물질을 다량 실으면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

3일 창원 폭발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요원들이 화물차를 감식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3일 창원 폭발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요원들이 화물차를 감식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화물차는 창원터널을 빠져나온 뒤 지그재그로 운전하며 1㎞를 달리다 중앙분리대와 부딪히며 화염에 휩싸였다. 화물차에 실린 기름통들이 불붙은 채 반대편 차로로 날아가 창원터널 방향으로 가던 차량 9대를 덮쳤다. 화물이 제대로 고정만 돼 있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숨진 화물차 운전기사 윤모(76)씨는 고령에다 몇 달 전 암 수술도 받았다고 한다. 최근 2년간 10번의 교통사고 이력도 있었다. 화물차 운전기사가 취득해야 할 화물운전 자격증도 없었다. 그런데도 화주 등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그에게 위험물 운송을 맡겼다. 윤씨가 운송회사에 개인 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는 지입차주여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화물 운송을 맡길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고 원인이 기사의 졸음운전 같은 신체 이상 때문인지, 아니면 브레이크 파열 등 차량 결함이었는지는 수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는 대형 화물 차량은 지금도 시한폭탄처럼 우리 곁을 지나다니고 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이번 사고는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안전의식 강화든 철저한 행정 조치든 이제 말뿐인 안전 대신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번지고 있음을 교통안전정책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위성욱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