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은 강화하는데…공식연비-실연비 격차, 40%대로 벌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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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강화하는 자동차 환경 기준 못지 않게 자동차 제조사들의 '테스트 맞춤형' 기술도 발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조사가 발표하는 공식 연비와 실제 주행 연비의 격차가 15년간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한 것이다. 이같은 연비 격차는 결국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격차로 이어져 '엄격한 환경기준'이 그저 생색내기용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험실-실제 도로주행' 연비 격차, 국가별로 천차만별 #'격차 최대' 일본…'실제보다 더 빡빡한' 미국 #제조사의 탄소배출량 저감 노력뿐 아니라 각국 관련 당국의 측정 방식 개선도 중요

자동차 배출가스 단속중인 공무원. [중앙포토]

자동차 배출가스 단속중인 공무원. [중앙포토]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5일(현지시간) '실험실에서 도로까지(From laboratory to road)' 백서의 2017년도 개정판을 공개했다. ICCT는 유럽 내 8개 국가에서 14곳에서 진행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백서를 발간했다. 조사 대상인 차량 수만도 110만대에 달한다.

백서에 따르면, 실험실과 실제 도로 사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격차가 2001년 평균 9%에서 지난해 42%로 꾸준히 증가했다. 다만,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 그룹의 '디젤 게이트' 사건으로 비롯된 자동차 제조사들의 '자정 노력'으로 2016년 증가폭은 소폭 줄어들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곧 자동차의 연비로 직결된다. 화석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만큼,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이 곧 사용한 연료의 양이기 때문이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가 EU 8개국 14곳에서 진행된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조사 결과를 종합했다. [사진 ICCT]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가 EU 8개국 14곳에서 진행된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조사 결과를 종합했다. [사진 ICCT]

백서는 유럽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측정 기준의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도 내놨다. 국가별로 연비 측정방식이 다른 만큼, 실험실과 실제 도로에서의 격차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실험실과 실제 주행환경에서의 격차가 가장 큰 것은 일본의 측정 기준이었다. 일본은 실제 환경과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기존의 '10-15 모드'를 개선한 'JC08' 방식의 측정법을 2008년부터 도입했다. '10-15 모드'와 'JC08'이 병행됐던 2008~2011년, 'JC08'은 보다 적은 격차를 보였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기타 지역의 격차를 훌쩍 뛰어 넘었다.

'10-15 모드' 측정방식은 마지막으로 사용된 2011년, 60%에 육박하는 격차를 보여 연비·탄소배출 측정 기준으로서 제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EU의 'NEDC' 방식도 일본 대비 적은 격차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는 꾸준히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각 국가·지역별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측정방식의 정확도를 비교했다. [사진 ICCT]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각 국가·지역별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측정방식의 정확도를 비교했다. [사진 ICCT]

실험실과 실제 도로에서의 탄소배출량 격차가 가장 적은 것은 미국 환경청(EPA)의 측정방식이었다. EPA의 측정방식으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할 경우, 도리어 실제 주행보다 소폭 더 많은 배출량이 측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보다 가혹한' 실험실 환경인 셈이다.

이번 백서는 환경당국과 자동차 제조사, 그리고 소비자 등 모두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했다. 자동차의 탄소배출 문제에 있어 자동차 제조사의 저감 노력뿐 아니라 관련 당국이 보다 현실성있는 측정 모델을 개발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ICCT는 유럽 평균격차인 42% 기준, 소비자가 1년에 400유로의 유류비를 더 쓰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문제점에 대해 제조사와 당국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문제제기가 필요한 이유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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