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학생의 고통 해소되나...서울대 ‘할랄 식당’ 만들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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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다니는 말레이시아인 아이린(22). 그는 하루 세끼를 모두 만들어 먹는다. 송우영 기자

서울대에 다니는 말레이시아인 아이린(22). 그는 하루 세끼를 모두 만들어 먹는다. 송우영 기자

무슬림인 아이린(22·말레이시아)은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이다. 우리 정부의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하루 세끼 챙겨 먹는 일이 유학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말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학교 식당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 음식을 먹는 그가 하루 세끼를 챙기는 방법은 대학 근처 자신의 원룸에서 만든 도시락을 이용하는 방법 뿐이다. 아이린은 “공부도 해야 하는데 도시락을 만드는 게 힘들어서 점심은 거르는 무슬림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무슬림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다른 고기들도 이슬람식 도축을 한 할랄 고기만 먹는다. 아이린의 경우도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이태원에서 할랄 고기를 사 온다고 한다. 이슬람식 도축은 무슬림이 기도를 한 후 동물의 목젖 부위에 있는 동맥과 정맥, 식도와 기도를 날카로운 칼로 단숨에 베는 방식을 말한다. 소고기·닭고기도 이슬람적 도축 방식을 거치지 않은 경우에는 할랄 음식이 아니다.

서울대가 무슬림 학생들을 위해 학교 안에 할랄 식당을 도입하기로 했다. 식당의 적당한 위치와 운영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오명석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가 교수평의원회 정책연구과제로 만든 보고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오 교수의 ‘외국인 학생의 대학 내 생활 여건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무슬림 학생들 대부분은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 교수팀이 무슬림 학생들 98명에게 서울대에서의 생활하며 겪은 가장 힘든 점을 묻자 전체의 74.5%가 ‘음식’이라고 답했다. 22.4%는 ‘기도 공간과 기도 시간의 부족’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음식이 이들의 가장 절실한 어려움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편견이나 히잡 착용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한 학생은 극소수였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무슬림 학생 중 아침·점심·저녁 모두를 본인이 요리한 할랄 음식으로 먹는 학생들은 전체의 53.2%였다. 보고서는 “무슬림 학생들은 이태원 등에서 산 할랄 재료로 요리를 하는데, 학교 안 기숙사는 요리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근처 원룸에 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하면서 최근 외국인 교수와 학생 수가 급증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 여건 및 복지 차원의 배려는 부족한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에 따르면 2000년 257명이던 외국인 재학생은 2015년 1334명으로 늘었다.

서울대는 현재 재학 중인 무슬림 학생 수를 3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무슬림 국적을 가진 외국인 학생 수에 해당 국가의 인원 대비 무슬림 비율을 곱해 추정한 수치다.

서울대는 할랄 식당을 이국적인 식당으로 특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300명의 무슬림 학생들만으로는 식당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창후 서울대 학생처장(식물생산과학부 교수)은 “한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할랄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적었다. 한국 학생들과 무슬림 학생들이 모두 즐겨 찾을 수 있는 식당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최대한 서둘러 시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양대 서울캠퍼스의 학생 식당에 마련된 할랄 음식 코너. [사진 서울대]

한양대 서울캠퍼스의 학생 식당에 마련된 할랄 음식 코너. [사진 서울대]

한양대는 2013년 3월 국내 대학 최초로 교내 학생회관의 학생식당에 할랄 전문 코너를 열었다. 처음에는 주 2회만 제공하다 지금은 주 4회로 확대했다. 경희대는 지난해부터 청운관 학생식당에서 주 3일 할랄 육류를 사용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할랄 재료 만으로 만든 음식에는 ‘Halal’,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에는 ‘No Pork’라고 표시한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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