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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아베 1강 권력의 산실 총리실 대해부

중앙일보

입력

“총리비서관(정무)인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의 존재는 크다. 높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마이 비서관은 제1차 아베 내각(2006~7년)에서 경제산업성 파견 총리비서관으로 근무했고, 그 이후에도 줄곧 나를 뒷받침해주었다.”

역대 최강ㆍ최고 평가의 스가 관방이 사령탑 #비서관 상당수가 1차 내각 때 일한 ‘재도전파’ #아베가 매일 여는 ‘6인회의’서 정책 방향 잡아 #총리실 주도로 의사결정ㆍ부처간 조정 빨라 #엘리트 관료 1100명...대통령제 비서실 못잖아 #

지난해 11월 2일 일본 총리 관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논픽션 작가 오시타 에이지(大下英治)와 가진 특별 인터뷰를 비서관들 칭찬으로 시작했다. 이마이는 중앙 부처에서 총리실(내각 관방ㆍCabinet Secretariat)에 파견된 여섯명의 비서관 중 수석비서관이다. 총리의 정책ㆍ스케줄ㆍ메시지를 관리한다. 나머지 다섯명은 재무ㆍ외무ㆍ경제산업ㆍ방위성과 경찰청에서 파견된 심의관 이상의 엘리트 관료들이다. 관가 최고봉인 사무차관 후보들이 적잖다. 아베는 “(2012년) 2차 아베 정권에는 1차 때 정권 운영을 경험한 사람이 많다. 성공도, 실패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해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재도전파”라고 했다. 이들은 2007년 아베의 총리 퇴진 후 절치부심하다 다시 합류해 친위대, 복수파라고도 불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이마이 다카야 정무비서관. 이마이는 관료 출신 정무비서관으로 막후 실력자로서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지통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이마이 다카야 정무비서관. 이마이는 관료 출신 정무비서관으로 막후 실력자로서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지통신]

하세가와 에이이치(長谷川榮一) 공보관은 1차 내각에 이어 같은 직책을 재수하고 있다. 현재는 총리보좌관(정책 기획담당)을 겸임한다. 내각 정보기관인 정보조사실을 관장하는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정보관은 1차 때 경찰청 파견 비서관이었다. 기타무라는 지난 한해 가장 많이 아베를 만난 인사이기도 하다. 스즈키 히로시(鈴木浩) 외교비서관과 나카에 모토야(中江元哉) 재무비서관은 아베가 관방장관일 때의 비서관이다. 스즈키는 주한일본대사관 총무공사와 공보문화원장을 지냈다. 비서관 가운데 이마이는 아베와 각별하다. 대(代)를 이어 참모를 하고 있다. 이마이의 큰아버지 이마이 젠에이(善衛)는 통산성(현 경제산업성) 관료로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통산상일 때 비서관이었다. 훗날 통산성 사무차관을 지냈다. 신일본제철 사장과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지낸 이마이 다카시(敬)는 이마이의 작은아버지다. 이마이 비서관은 아베 1차 내각 당시 아베의 퇴진을 끝까지 만류한 인물 중 한명이다. 아베 퇴임 후에는 하세가와 공보관과 셋이서 등산을 하면서 친분을 다졌다고 한다.

이마이는 관료 비서관이면서도 아베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아베는 지난달 10일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기 두 달 전쯤인 8월 말 자택 별실에서 이마이에게 해산 준비를 지시했다는 보도다. 아베가 정치 동지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에게 해산 협조를 요청한 것은 그 보름 후였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당초 중의원의 조기 해산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마이는 외정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올 2월 워싱턴에서의 미ㆍ일 정상회담 직전 두 차례 방미해 안보와 통상문제 의제를 조율했다. 상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로 실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5월에는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정부 주최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회의 참석이 표면상 이유지만 중국 지도부에 아베의 관계 개선 메시지를 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마이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정무보좌관의 단독 외유는 극히 이례적이다. 이마이가 아베의 복심 중 복심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아베 총리실을 떠받치는 다른 축은 정치인 그룹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필두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ㆍ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부(副)장관이 총리를 보좌한다.스가 관방장관은 영문(Chief Cabinet Secretary) 그대로 총리실 사령탑이다. 수석 장관과 정부 대변인을 겸임한다. 중의원 의원인 니시무라와 참의원 의원인 노가미는 중ㆍ참의원 대책을 맡는다. 관방부장관은 모두 세명으로 나머지 한명은 관가의 정점인 스기타 가즈히로(杉田和博)다. 경찰청 출신으로 중앙부처를 관장한다. 관방장관ㆍ관방부장관은 정치인에 출세 코스다. 아베는 모리 요시로(森喜朗)ㆍ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 관방부장관ㆍ관방장관을 거쳐 총리로 직행했다.

스가는 2차 아베 내각 이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관방장관 재임 기간이 가장 길다. 아베가 ‘한 내각에 한명의 관방장관’을 관철할 정도로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다. 아베와는 1차 내각 때 총무상으로 처음 입각하면서 본격적인 연을 맺었다. 스가는 2010년부터 아베의 재등판을 설득해왔다고 한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한 달 전엔 3시간 동안 출마를 망설이던 아베를 설복해 아베 2차 내각의 길을 열었다. 관료 출신 비서관들과 마찬가지로 아베엔 재도전파인 셈이다. 스가는 욕심이 없는 참모형으로 입이 무겁고 침착하다. 정치 스승으로 삼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의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과 닮은 구석이 있다. 일각에선 역대 최강ㆍ최고의 관방장관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총리실의 사령탑으로 아베 총리가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다. 역대 최고,최강의 관방장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지통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총리실의 사령탑으로 아베 총리가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다. 역대 최고,최강의 관방장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지통신]

아베 내각의 관방부장관 중에는 아베의 측근이 많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ㆍ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대행이 그들이다. 총리보좌관 5명 가운데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의원 등 3명의 정치인도 아베의 버팀목 역이다. 스가ㆍ세코ㆍ가토ㆍ에토는 아베가 지금도 회장으로 있는 우파 성향의 초당파 의원모임 ‘창생 일본’의 핵심 회원이다. 현 관방부장관인 니시무라ㆍ노가미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개헌론자요 강한 일본 신봉 주의자들이다. 스기타 관방부장관은 76세로 정보ㆍ공안통이다. 경찰청 공안 1과장ㆍ경비국장을 거친 뒤 내각 정보관ㆍ위기관리감을 지냈다. 아베 2차 내각부터 합류해 정권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취임 4년여 동안 오키나와(沖繩) 방문을 빼고는 도쿄를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베는 참모들 가운데 매일 스가 관방장관, 3명의 관방부장관, 이마이 정무비서관과 20분 정도 회의를 한다. ‘정(正)ㆍ부(副)장관 회의’로 불리는 6인회의다. 회의는 총리의 생각을 공유하고, 총리에 건의하는 의사소통의 장이다. 중ㆍ참의원 국회 대책도 여기서 결정된다(『아베 관저 ‘권력’의 정체』, 오시타 세이지). 회의에선 주요 정책의 방향도 잡힌다. 결정 사항은 스기타 관방부장관을 통해 세명의 관방부장관보(補)를거쳐 부처에 전달된다. 총리와 참모들의 팀플레이, 결속력이 아베 1강(强)의 원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기타 가즈히로 관방부장관. 경찰청 경비국장 출신으로 관료사회 정점에 올라 내각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

스기타 가즈히로 관방부장관. 경찰청 경비국장 출신으로 관료사회 정점에 올라 내각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

관방부장관보는 재무성 출신 후루야 가즈유키( 古谷 一之)가 내정을, 외무성의 가네하라 노부카쓰(兼原信克)가 외정을, 방위성 출신의 나카지마 아키히코(中島明彦)가 안보ㆍ위기 관리를 맡고 있다. 가네하라ㆍ나카지마는 국가안전보장국 차장을 겸임한다. 가네하라는 『전략외교원론』이라는 책을 냈을 정도의 이론파 외교관으로 주일한국대사관 정무공사도 역임했다. 관방부장관보실에는 각 부처의 과장급 에이스 30명이 파견돼 있다고 한다. 이 산하에 각 부처를 아우르는 30여개의 정책 사무국과 추진실이 설치돼 있다. 아베의 간판 정책인 지방 창생, 1억 총활약 사회, 근로 방식 개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총리실이 정책을 주도하다 보니 의사결정과 부처 간 조정이 빠르다. 인원도 덩달아 늘어나 현재 1100여명이다. 30년 전보다 다섯배 많은 규모다.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 외무성 사무차관 출신으로 아베 총리의 삼고초려로 초대 국장을 맡았다. [지지통신]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 외무성 사무차관 출신으로 아베 총리의 삼고초려로 초대 국장을 맡았다. [지지통신]

아베 내각 들어선 총리실에 두 개의 상설 조직이 신설됐다. 국가안전보장국과 인사국이다. 2014년 1월 발족한 국가안전보장국은 총리ㆍ관방장관ㆍ외상ㆍ방위상 등으로 구성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사무국이다. 내각의 외교ㆍ안보 정책 컨트롤 타워로 독립성이 강하다. 독자적 외교도 하고 정보도 수집한다. 외무성ㆍ방위성ㆍ경찰청 등 파견 관료가 70명 정도라고 한다. 국장은 외무성 사무차관 출신의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다. 아베가 관방부장관일 때 직속 관방부장관보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서 호흡을 맞췄다. 아베는 삼고초려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야치를 초대 국장으로 영입했다는 전언이다. 야치는 각국의 카운터파트들과 활발한 물밑 외교를 펴고 있다. NSC 발족으로 총리실의 대외 위기관리 능력과 아베의 외교적 입지가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들이다.

2014년 5월 출범한 인사국은 중앙부처 심의관급 이상 간부 600명의 인사를 관리한다. 인사국장은 정치인 관방부장관이 겸임하다 올 8월 스기타 관방부장관으로 넘어왔다. 중앙부처 인사는 관방장관과 3명의 관방부장관 회의에서 결정된다. 인사에 총리의 의향이 잘 반영되는 구조다. 아베 정권 들어선 인사 방식도 바꿨다. 그 전엔 총리실이 부처가 올린 단수 인사안을 추인할지를 결정했다. 지금은 부처에 복수의 인사안을 요구해 총리실에서 정한다. 발탁 인사가 적잖은 이유다. 아베는 인사국 현판식 때 ”지금까지의 가스미가세키(霞ヶ關ㆍ관청가의 속칭)는 선단(船團)이었다. 앞으로는 하나의 니혼마루(日本丸)라는 하나의 배에 타서 국민, 국가를 늘 염두에 두고 일하기 바란다 “고 말했다.

총리실이 관가 인사를 장악하면 관료는 권력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아베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재단에 대한 내각의 특혜 의혹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모리노부 시게키(森信茂樹) 주오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언론에 “총리실에 이의를 달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분위기가 관가에 만연하고 있다. 그 결과, 정책의 효과와 과제 검증에 필요한 논의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총리실이 세지면서 당정 관계도 정고당저(政高黨低)로 바뀌었다. 아베 총리실은 조직이나 규모 면에서도 대통령제의 비서실 못지않다. 여기에 일본은 행정부와 의회 권력이 일치하는 내각제다. 의회는 지금 중ㆍ참의원 모두 연립여당이 3분의 2를 넘고 있다. 아베를 두고 대통령적 총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쿄 나가타초 총리 관저 전경. 아베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3연임을 이뤄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될지 주목을 끌고 있다. [지지통신]

도쿄 나가타초 총리 관저 전경. 아베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3연임을 이뤄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될지 주목을 끌고 있다. [지지통신]

5일 현재 아베 총리의 재임 기간은 2143일이다. 제1차 내각을 포함해서다. 전후로 치면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ㆍ2798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ㆍ2616일) 전 총리에 이어 세 번째다. 아베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 하면 2019년 8월에는 사토 전 총리를 제치고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그해 11월에는 역대 최장기 총리인 가쓰라 다로(桂太郞)의 2886일을 넘는다. 1일 4차 내각을 발족시킨 아베는 2019년까지 개헌 완료, 2020년 새 헌법 시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베의 핵심 참모들이 향후 어떤 시나리오를 그려갈지 궁금하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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