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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백성의 나라를 꿈꿨던 왕, 정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정조 평전-성군의 길

정조 평전-성군의 길

정조 평전-
성군의 길(상·하)
한영우 지음, 지식산업사

영조와 정조가 다스렸던 1724~180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탕평(蕩平)’과 ‘민국(民國)’이다. 탕평은 많이 들어봤지만 민국은 생소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명에도 쓰인 ‘민국’은 외국에서 들여온 말이 아니라 영조 때부터 사용된 우리의 고유 용어다. 민국 즉 ‘백성의 나라’는 그때부터 국가 정책의 목표였다. 민국을 실현하는 방법이 당파를 조율하는 탕평이었다.

정조는 세종과 함께 조선시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금이지만 의외로 그를 본격 조명하는 책은 많지 않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번에 펴낸 평전은 860여 쪽이 넘는 분량으로 정조의 삶과 정치를 세밀하게 되돌아보고 있는데, 특히 민국 개념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조 관련 책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저자는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3대의 삶과 정치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정조의 딜레마는 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임금으로 만들어준 은인이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의 명예를 모두 살려내는 일이 정조가 선보인 ‘효치(孝治)’의 핵심이었다.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때로는 신하들을 욕지거리로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성군(聖君)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과 목적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당파와 백성을 모두 끌어안으면서 성군의 대도를 가려는 데 있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정조의 콤플렉스가 오히려 그를 지혜로운 성군의 길로 이끌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정조에게서 마키아벨리가 우수한 정치가의 덕목으로 제시한 사자 같은 용맹, 여우 같은 지혜를 모두 발견해내기도 한다.

정조 사후 19세기 전반에 노론 세도정치가 만연하며 나라의 발전을 후퇴시킨 것을 저자는 안타까워하면서 정조의 탕평과 민국 이념이 고종에 이르러 부활하며 근대화의 과제와 접목되었다고 평가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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