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유니폼 55만에 삽니다" 중고나라 시끄러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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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판매된 한 항공사의 승무원 유니폼 사진. [사진 중고나라 캡처]

최근 판매된 한 항공사의 승무원 유니폼 사진. [사진 중고나라 캡처]

수십만원에 거래되는 승무원 유니폼…항공사 “헌 유니폼 반납해라”, 승무원들 “누가 모아두나”

'항공사 승무원 유니폼 55만원에 삽니다.'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지난달 21일에 올라온 글이다. 글쓴이는 “찢어지거나 오염된 곳이 없으면 좋겠다”는 요구사항도 적었다. 며칠 뒤 이 글에는 해당 항공사 직원이 쓴 댓글이 달렸다. '저희 유니폼의 소유권과 디자인권은 당사에 귀속돼 있어 중고품 거래 시 법에 저촉됩니다. 게시물이 삭제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 검토 예정입니다.'

항공사들이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승무원 유니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옷과 물품들이 비싸게는 수십만원에 사고 팔리는데, 항공사 입장에서는 기업의 이미지 실추와 공항에서의 보안 문제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승무원 유니폼은 항공사의 얼굴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이걸 막지 않으면 일반인이 승무원인 척 공항의 특정 시설에 들어가려 하는 등 보안 문제도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승무원들에게 매년 정해진 의복 포인트를 지급한다. 승무원들은 이 포인트로 낡거나 분실한 유니폼을 대신할 물품을 받는다. 스타킹이나 목에 두르는 스카프, 승무원용 캐리어도 마찬가지다. 승무원들에게 매년 700~800포인트 정도를 지급하는 한 항공사의 경우, 재킷은 117포인트, 스커트(치마)는 65포인트, 여름에 입는 블라우스는 50포인트로 책정돼 있다.

“판매자는 극히 일부”…하지만 항공사는 ‘이미지 걱정’

인터넷에서 최근 거래된 내역을 보면 한 항공사의 재킷은 22만원, 스커트는 15만원, 스카프는 5만원에 판매됐다. 승무원 A씨는 “자기 물건을 파는 승무원들을 극소수이다. 이들 때문에 전체 승무원들의 이미지가 실추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항공사의 승무원 유니폼을 거래하는 사람들의 글. [사진 중고나라 캡처]

항공사의 승무원 유니폼을 거래하는 사람들의 글. [사진 중고나라 캡처]

한 승무원 유니폼 구매 희망자는 인터넷 게시판에 “OO항공사의 유니폼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촬영용으로 필요하니 연락 달라”고 적었다. 또 다른 구매자는 “항공사 승무원 유니폼이나 KTX 승무원 유니폼을 구하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승무원 유니폼 모조품을 팔면서 "남성들이 선호하는 제복 1순위"라고 홍보하는 온라인 게시물. [사진 중고나라 캡처]

승무원 유니폼 모조품을 팔면서 "남성들이 선호하는 제복 1순위"라고 홍보하는 온라인 게시물. [사진 중고나라 캡처]

진짜와 비슷한 승무원 유니폼을 만들어 파는 이들도 등장했다. 한 판매자는 “진짜와 거의 같은 상품이다. (승무원 유니폼은)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복 1순위니까 가게 분위기를 새롭게 바꿔보고 싶은 분들이나 파티복으로 좋다”는 홍보 글을 올렸다. 일부 주점에서 종업원들에게 승무원 유니폼을 입히기 위해 구매하려는 수요가 있다는 것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사 “헌 유니폼 반납해라”, 승무원들 “누가 모아두냐”

한 항공사는 지난달 30일 승무원들에게 ‘제복 반납절차 변경’이라는 공지를 했다. 기존에는 포인트를 사용해 새 유니폼을 받은 승무원들이 헌 옷들을 반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모두 반납받겠다는 내용이다. 바뀐 규정을 따르지 않는 승무원들에게는 퇴직 후 퇴직자 항공권 혜택을 없애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중고 유니폼 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미 받은 물품들도 반납하라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승무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승무원 B씨는 “반납 대상 유니폼을 조회해 보라고 해서 누르니 지난 2년간 받은 모든 물품이 반납 대상으로 나와 있다. 기존의 낡은 유니폼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승무원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생각을 익명으로 공유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에는 “유니폼을 돈 받고 파는 사람들을 잡아낼 생각을 해야지 이게 뭐냐”, “6000명의 승무원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나”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해당 항공사 관계자는 “유니폼 거래를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의도였는데 승무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되도록 승무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도를 다시 정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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