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다양한 생각 존중이 촛불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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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우영 사회2부 기자

송우영 사회2부 기자

인터뷰 거절은 기자라면 누구나 종종 겪는 일이다. 대개 “바빠서”나 “잘 몰라요” 등의 이유를 듣게 된다. 28일 촛불집회 1주년 기념 ‘여의도 촛불파티’에서 인터뷰 제안을 거부당하는 경험을 또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이유가 조금 달랐다. 핼러윈 축제용 귀신 복장으로 늦은 밤까지 횡단보도 근처에서 시민 질서 유지를 돕던 그의 인터뷰 거절의 변은 이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자원봉사 하러 온 사람도 저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라요. 제 말이 촛불파티 참가자 전체의 생각처럼 소개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왜곡하는 결과가 될 것 같아 걱정되네요.”

그의 말조심은 이날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로 나뉘어 치러지는 바람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 상황을 부담스럽게 여겼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해도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이라는 그의 말은 내 마음속에 작은 울림을 만들었다.

촛불집회 1주년 기념 집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여의도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촛불집회 1주년 기념 집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여의도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서울 여의도 집회 참가자 중에는 “현 정부는 잘하고 있으니 광화문이 아니라 야당이 있는 여의도로 가자”는 의견에 따라 광화문이 아닌 이곳에 모인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적폐 청산하라” “MB(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하라” 구호 외에도 “청소년 참정권 보장하라” 등 여러 주장이 나왔다. 한 가수는 버스킹 공연을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를 잊지 말자”고 외쳤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은 단지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올바른 세상을 만들자는 요청이었다”는 한 시민의 말처럼 광장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글에 “촛불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다. 국민과 함께 가야 이룰 수 있는 미래다. 끈질기고 지치지 않아야 도달할 수 있는 미래다”라고 적었다.

국민은 촛불파티에 등장한 각양각색의 핼러윈 의상들만큼이나 개성 있고 다채로운 생각을 갖고 있다. “‘촛불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 집회를 보이콧하고 야당이 있는 여의도로 가서 핼러윈 파티를 하자”는 목소리도, “온 국민이 만든 촛불집회를 특정 집단이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모두 우리의 ‘촛불들’이다.

문 대통령은 함께 이루는 미래, 지치지 않고 도달하는 미래를 말했다. 내가 든 촛불만이 정의라고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촛불도 존중하는 것이 대통령이 얘기한 그 미래로 가는 길이다.

송우영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