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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아베’ 대신 신중함 어필하며 개헌 타이밍 저울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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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11면

[전문가 분석] 조기 총선 대승한 아베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가 23일 도쿄 자민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가 23일 도쿄 자민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2일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집권 자민당이 284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함께 헌법 개정안 발의에 필요한 재적 3분의 2를 초과하는 의석수를 확보한 것이다.

개헌선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국민투표 통과가 더 중요해져 #낮은 지지율 의식 당분간 저자세 #강한 추진력이 개헌에 방해될 수도 #아베 개헌안에 명확히 반대하는 #입헌민주당이 제1야당 돼 불리 #연립여당 공명당도 브레이크 걸 듯

이번 일본 선거의 특징은 중의원 해산 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이 대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국회를 해산할 때만 하더라도 모리토모·가케학원 문제로 인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아베 정권의 앞날이 불투명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선거에 돌입하자 예상과는 달리 자민당이 과반을 차지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야당이 선거 이전부터 지리멸렬했고, 정책 선거를 하기는커녕 반아베표를 분산시켰기 때문에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야권이 분열한 최대 원인은 민진당의 내분이었다. 민진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대표가 중의원 선거 전에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희망의당 합류를 표명한 결과 민진당이 희망의당·입헌민주당·무소속 등으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민진당은 마에하라 집행부가 발족하기 전에는 공산당·사민당 등과 함께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우고자 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32개 1인 소선거구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워 11승을 거두기도 했다.

반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는 민진당과 야권의 분열로 인해 자민당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복수의 야당 후보가 경합한 ‘야당 분열형’ 226개 선거구 중 약 80%인 183개 선거구에서 여당 후보가 승리한 것이 그 결과다. 이에 비해 ‘여야 일대일’ 대결이었던 57개 선거구에서는 여당 39승, 야당 18승으로 야당 측이 나름대로 선전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야당 후보들의 득표를 단순 합산하면 ‘야당 분열형’ 226개 선거구 중 약 30%인 63개 선거구에서 승패가 역전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야당이 통일 단일후보를 내세웠다면 이들 63개 선거구에서 승패가 뒤집혀 여당 120승, 야당 106승이 될 가능성이 컸다. 즉 현재 자민당 압승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

야권이 지리멸렬하면서 자민당에 잘 대응하지 못한 배경에는 고이케 희망의당 실패 탓이 크다. 선거 초기에는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희망의당이 자민당을 위협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고이케 개인의 인기에 의존했던 희망의당은 고이케의 오만과 판단 착오로 결정타를 맞으면서 희망의당이 일으켰던 바람이 금세 사그라졌다. 일본 언론에서는 고이케 지사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제1야당인 민진당 의원들을 배제하면서 정권 교체의 꿈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번 선거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희망의당은 절망적인 결과를 받았고, 앞으로도 희망의당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역설적으로 야당의 몰락 속에서 일약 히어로가 된 정치가는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다. 에다노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진짜 남자’라는 이미지로 희망의당의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어 입헌민주당을 살렸다. 그 결과 중의원 선거 전에는 15석에 불과했던 입헌민주당이 세 배를 넘는 55석을 획득하는 약진을 거뒀다. 그러나 입헌민주당이 희망의당을 넘어 제1야당이 되기는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장 약체 제1야당이 된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도 야권이 참패하지 않으려면 현재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이 결집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있다.

하지만 안보체제를 반대하는 에다노의 주장은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이 결집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입헌민주당은 정책적으로 안보체제 반대를 명확히 해 소위 ‘리버럴 진영’의 결집을 이끌어 냈지만 안보체제가 중시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권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베 총리가 자위대의 날인 지난해 10월 23일 도쿄 북부 아사카에서 자위대를 사열하고 있다. [AP]

아베 총리가 자위대의 날인 지난해 10월 23일 도쿄 북부 아사카에서 자위대를 사열하고 있다. [AP]

23년 전 사회당의 몰락은 일본 정치에서 리버럴이 가진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이면서, 또 현재의 입헌민주당에 주는 시사점이기도 하다. 1994년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위원장이 자민당과 연립해 정권을 잡았지만 사회당의 당초 주장과는 달리 자위대를 합헌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사회당은 지지세력의 일탈을 가져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게다가 2009년 민주당 정권의 실패로 인해 일본 국민이 리버럴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점 역시 입헌민주당의 주장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은 야권의 분열·약체화와 자민당 1강 체제의 지속에 힘입어 2020년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내년 가을의 총재 3선도 무난하게 넘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제 아베 총리가 어떤 일정으로 헌법 개정을 추진할 것인지가 일본 정국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 일본 정치에서 3개 세력(자민당과 공명당의 여당, 희망의당과 유신의당,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의 대립 축이 형성됐다고 하지만 자민당과 타 두 세력 사이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자민당 1강 체제의 지속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아베 총리의 외교안보정책이 안정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국민의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 중국의 군사 팽창이 계속되고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일본 국민은 아베 총리를 적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비해 야당은 민주당 정권 시절 미·일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이미지가 강해 국민적 불신감이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선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가 사라지면서 아베의 북핵 문제에 대한 ‘국란 극복’이라는 주장이 국민에게 먹혀든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일본 정치권 내에서 금기시됐던 헌법 개정에 대한 거부감은 점차 사라지게 됐다. 즉 일본 정치의 해묵은 이슈인 헌법 개정은 안보 불안의 와중에서 더 이상 쟁점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리버럴조차 헌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수인 3분의 2 선을 저지해야겠다는 논의는 이번 선거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미 일본 정치권에서는 선거 전부터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이 거의 82%라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단지 어떤 내용으로 헌법 개정을 할 것인지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헌법 개정 논의는 아베 총리가 상정한 ‘프레임’(예를 들면 자위대 명기)이 중요한 논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베 총리가 너무 성급하게 헌법 개정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본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제는 국회에서 개헌을 할 수 있는 숫자를 충분히 확보, 장차 개헌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벌써 아베 총리는 여론을 의식한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광범위하게 합의 형성에 노력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단적인 예다. ‘강한 아베’의 모습은 사라지고 신중함을 국민에게 어필한 것이다.

이러한 저자세 접근의 이유로 우선 아베 총리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임을 꼽을 수 있다. 선거 이후 지지율이 50% 선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높아서다. 헌법 개정에 과반수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아베의 강한 추진력은 오히려 장애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자위대의 명기는 자민당 내에서조차 아직은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의 개헌안은 헌법 9조의 교전권 부인, 전력(戰力) 불소지 등의 규정과 모순되는 측면이 남겨져 있다. 이에 자민당 내에서는 9조의 개정을 주장하자는 의견이 강해 앞으로 자민당 내부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의 과제가 남아 있다.

또한 헌법 개정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희망의당이 쇠퇴하고 총리의 안에 명확히 반대하는 입헌민주당이 제1야당이 된 것도 새로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입헌민주당은 ‘입헌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헌법 개정을 맡길 수 없다’고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만큼 아베의 헌법 개정 추진에 난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 무엇보다 아베의 헌법 개정의 어려움은 공명당과의 조정 과정일 것이다. 23일 자민당·공명당과의 협의 과정에서도 공명당은 벌써 헌법 개정 논의에 브레이크를 거는 자세를 보여 주려고 했다.

이제 일본 정치사에서 헌법 개정 시대는 본격 개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설사 아베 총리가 정치권 내의 장애물을 극복한다고 할지라도 일본 국민의 마음속 장애물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태도, 정국 동향, 그리고 북핵 문제의 진전 등은 여론의 동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북핵 문제의 진전은 촉진요소도 될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앞으로 그 모든 변수의 향방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도쿄대 정치학 박사로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교토대 법학부 초빙학자, 현대일본학회 회장과 홋카이도대 특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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