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 사건’ 경찰, “출동” 보고하고 대기...9명 징계·문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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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학이 중랑경찰서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뒤 호송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이영학이 중랑경찰서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뒤 호송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이영학 사건'에서 피해 여중생 실종 당시 초동수사에 나선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감찰 결과가 나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영학 사건을 수사한 중랑경찰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감찰 조사한 결과 지휘·보고체계·초동대응 등 전반에 걸친 부실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사건 관계자 9명에 대한 징계 또는 문책 절차도 진행한다.

피해 학생 행적 조사 안해 

우선, 중랑서는 피해 학생인 A양의 실종신고 접수와 처리, 신고자인 A양 어머니 조사, 현장 출동, 보고체계 가동 등 초동조치에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감찰 결과 중랑서 망우지구대 경찰관은 A양의 실종을 신고한 A양 어머니를 상대로 A양 행적 등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구대에서 A양 어머니가 이영학 딸과 통화하는 것도 귀담아듣지 않아 핵심 단서를 확인할 기회도 놓쳤다.

"출동하겠다" 보고하고 대기 

또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 경찰관은 실종신고 접수 후 범죄나 사고 관련성이 의심되면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출동하지 않았다. 최초 신고를 접수한 112상황실에서는 여중생이 실종된 만큼 여청수사팀도 즉시 현장에 출동해 지구대와 함께 수색하라는 '코드1' 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여청수사팀 소속 경위와 순경은 "출동하겠다"고 보고한 후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허위보고를 한 셈이다. 이들의 사무실 대기는 경찰서의 폐쇄회로(CC)TV로 확인됐다.

이들은 감찰 조사에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휘체계 부실 

이번 감찰에서는 지휘체계에서도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됐다. 당직 상황관리관이었던 중랑서 청문감사관은 실종아동 신고 접수 후 현장 경찰관에게 수색 장소를 배정하는 등 구체적으로 임무를 부여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 여성청소년과장은 '범죄 연관성이 의심된다'는 수사팀장 보고를 받고도 서장에게 뒤늦게 보고했다.

중랑서장은 실종사건 총책임자로서 현장 경찰관들의 대응지침 위반과 지연보고, 112 신고처리 지침 위반 등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이 인정됐다.

서울경찰청은 중랑서장·여청과장·상황관리관 등 경정급 이상 3명은 경찰청에 조치를 요청하고, 여청수사팀장과 팀원 2명, 망우지구대 순찰팀장과 팀원 2명 등 경감급 이하 6명은 징계·인사조치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경정급 2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서장에 대해서는 지휘책임을 인정해 문책성 인사조치하고 직권경고하기로 했다. 다만, 서장이 당시 의무를 게을리한 부분은 없었다고 판단해 정식 징계절차는 밟지 않을 방침이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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