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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특별시’가 된 서울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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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2부 기자

장주영 사회2부 기자

“제대로 된 회의 한 번 안 열리는 위원회도 있습니다.”

급증하는 서울시 각종 위원회를 놓고 한 공무원은 이렇게 전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위원회는 5년 만에 80개 이상 늘어나고 관련 예산도 20억원 이상 증가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정종섭(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위원회는 2011년 103개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85개에 달했다. 소요 예산은 같은 기간 18억7200만원에서 40억45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위원회특별시’의 실상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지적사항이다.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 위원회 남발은 고질병이다.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거나 법령을 만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위원회 설치를 위한 근거조항을 만든다. 위원회 시스템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효과보다 절차에 집중하는 습성이 문제다. 의견 수렴이나 심의는 고사하고 회의 한 번 안 여는 위원회가 수두룩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서울시는 위원회 숫자를 늘리면서 내실까지 다져왔다고 항변한다. 매년 자체 평가를 통해 유명무실한 위원회를 폐지·통폐합·비상설화하는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비가 된 위원회가 2개뿐인 걸 보면 대부분의 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했다는 얘기인가.

실상을 보면 내부에서조차 “유명무실하거나 기능이 중복되는 위원회가 많고 참석 인사에 대해서도 불만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시정에 시민과 전문가의 참여를 늘리는 건 찬성한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위원회를 만드는 경향은 문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아무래도 시장님과 철학을 공유하는 시민단체 쪽 분들이 위원회에 많이 참여한다. 현실 행정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할 때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코드가 맞는 인사가 대거 포진한 ‘박원순 위원회’를 우려하는 목소리다.

시민 참여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보여주기식 참여에 그치거나, 시장이 보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가 24일 운영에 들어간 ‘민주주의 서울(democracy.seoul.go.kr)’은 긍정적이다. 온라인을 통해 시민이 손수 정책 제안·결정·실행 등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부실 위원회를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의 사기와 업무 효율을 위해 서울시 위원회의 수요·공급 곡선을 한번 그려볼 일이다.

장주영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