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 사람 죽이는 개 아닌 '사람 구하는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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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조대 인명 구조견이 23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물류센터 공사장 옹벽 붕괴 현장에서 매몰된 근로자를 찾기 위해 투입됐다. 최정동 기자

119 구조대 인명 구조견이 23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물류센터 공사장 옹벽 붕괴 현장에서 매몰된 근로자를 찾기 위해 투입됐다. 최정동 기자

23일 오전 10시 30분경,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한 물류센터 건설현장에서 높이 20여m, 길이 80여m의 옹벽이 붕괴했다. 이 사고로 철제 가설물을 해체하던 배 모 씨와 이 모 씨 등 작업자 2명이 매몰됐다. 배 씨는 바로 구조됐으나 이 씨는 흙더미에 묻혔다.

옹벽 위에서 가설물 제거 후 옹벽 뒤편을 메우는 '흙막이 작업'을 하기 위해 갖다 놓은 굴삭기 1대도 옹벽 아래로 추락했다. 굴삭기 기사는 건강 검진을 위해 자리를 비워 화를 면했다. 문제는 매몰된 이 씨 구조였다.

붕괴가 멈추자 공사 관계자는 이 씨가 매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굴삭기로 파기 시작했다. 이때가 1시 30분 무렵이었다. 이 씨가 매몰된 지 3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오후 2시, 어느 정도 흙 파기가 진행되자 구조대는 인명구조견을 투입했다. 추가 붕괴 위험이 있었지만, 구조견은 운영요원과 현장을 누비며 이 씨를 추적했다. 10분이 흘렀으나 구조견은 이씨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땅파기가 진행됐다. 2시 57분 수색견이 2차로 투입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조견이 추락한 굴삭기 쪽으로 직행하더니 크게 짖기 시작했다. 이어 현장을 확인한 운영요원이 "여기 있다"고 큰소리를 질렀다. 3시경이었다.

119 구조대가 급히 흙을 파냈지만 이 씨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4시간 40분이 흐른 때였다. 공사현장에는 평소 근무자가 많았으나 이날은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어서 근무자가 적었다고 한다.

구조견이 이 씨를 발견한 장소는 공사관계자들이 추정한 위치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이다. 수색견이 아니었다면 이 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날 공을 세운 구조견은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 종이다. 사냥개로 적합하고 운동량이 많은 견종이다.

사진·글=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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