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부처님 손바닥 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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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32강전> ●박정환 9단 ○구쯔하오 5단

6보(76~92)=이제 반상의 중심은 좌상이다. 박정환 9단은 77로 늘었는데, 이는 귀에서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로 둔 수가 아니다. 백이 좌상귀 흑 두 점을 잡도록 강요하면서, 두텁게 시커먼 외벽을 쌓아놓을 계획으로 둔 수다. 이른바 '버림돌 작전'이다. 박 9단은 상대가 미끼를 물 수밖에 없게 만든 다음, 다른 사냥을 시작할 참이다. 지금 흑의 진짜 목표물은 상변에 둥둥 떠 있는 백 넉 점이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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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드디어 백의 머리로 흑돌 하나가 떨어졌다. 노골적인 진로 방해다. 이제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앞길이 꽉 막힌 백은 바쁘게 활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워낙 흑의 외벽과 세력이 단단해서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백이 86, 88로 뛰자, 흑은 89, 91로 투박하게 활로를 잘라버린다. '참고도'처럼 백1로 나가 봐도 흑2로 차단하면 뚫고 나가기 쉽지 않다. 지금은 백이 아무리 날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참고도

참고도

구쯔하오 5단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렵다면 적진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궁핍하더라도 어떻게든 두 집만 내면 되는 것 아닌가. 백은 방향을 틀어 92로 안형을 확보하러 갔다. 박정환 9단은 진로를 변경한 사냥감을 가만히 주시한다. 과연 백마는 시커먼 흑의 포위망 안에서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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