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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지는 나라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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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광형 KAIST 바이오 뇌공학과 교수

이광형 KAIST 바이오 뇌공학과 교수

1806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의 말발굽 아래 맥없이 무너지자 덴마크로 피신했던 철학자 피히테는 이듬해 프랑스군이 점령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매주 연설을 했다. 독일이 패배주의에 빠져 분열되는 한 이런 수모는 계속될 것이라 주장하며 분연히 일어서 싸울 것을 주창했다.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속 강연이다. 그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 국민정신의 회복에 있음을 강조하며 실의와 분노를 딛고 일어설 것을 주장했다. 피히테의 연설은 실의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1871년 독일 통일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포·N포는 암울한 청년 현실 반영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시급 #학력차별금지로 학벌주의 없애고 #성실성·기술로 성공하는 사회돼야

우리나라에는 젊은이 사이에 3포·N포·헬조선 등 무기력하고 자포자기적 말들이 회자하고 있다. 이런 말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언어는 의식의 표현이면서 의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려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어서 막막하다. 직장이 없으니 결혼해 가정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 금수저 물고 나온 사람들만 잘나가는 것 같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될 것 같지 않고 불평등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결국 희망을 갖지 못하고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칠흑같이 어둡던 일본의 압제 속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수모를 당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깨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민족과 사회와 공공을 생각하는 국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 바로 안창호 선생이 걱정하던 그 국면이다. 20년 전에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IMF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던 애국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불과 15년 전 월드컵 기간에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치던 그 함성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시론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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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기본적인 일이 청년들의 가슴속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노력하면 합당한 대가가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첫째, 노력에 의해 계층 간 이동을 쉽게 해주는 ‘교육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가 되살아나게 해야겠다. 청년 낙망의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재력이 사교육을 통해 자녀의 교육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다시 자녀의 직업에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공교육 복원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블라인드 채용 시험 방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나아가 ‘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만연된 학벌주의를 타파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일부에서는 학력도 노력의 결과인데 노력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많은 공부를 했으면 그것은 근무 중에 발휘돼 인정받게 될 것이다. 채용 과정에서 혜택을 받는 것은 이중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사업 사다리’를 통한 성공이다. 과거에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더라도 좋은 아이디어와 성실성으로 사업을 성공시켜 사회적인 신분 변화를 이룬 사례가 많았다.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달라졌다. 자신이 사업을 시작해 자수성가하는 사례가 드물어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규제가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성실성과 기술만 가져도 사업을 펼치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창업자 연대보증, 실패 용인,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 등을 해결한다니 기대하고 싶다.

아울러 청년들도 생각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지만 과거 부모 세대에는 더 어려웠다. 대부분의 부모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배고픈 시절을 견디고 오늘을 이룩했다. 마음에 드는 직장에 가려고 실업자로 남는 현 상황은 어쩌면 호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청년들의 하소연이 들린다. “부모 세대는 경제 성장기라 고생 속에서도 희망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도 구성원이 하기에 달려 있다. 지금도 열심히 뛰면 대한민국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다 함께 불평등의 분노를 비장한 결기로 승화시키자. 대한민국을 더 큰 나라로 만들자. “꿈은 이루어진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