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정 '불인증',헤일리 뜨고 틸러슨 찌그러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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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핵합의를 제대로 안 지키고 있다"는 '불인증' 선언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니키 헤일리 미 유엔주재 대사.

"이란이 핵합의를 제대로 안 지키고 있다"는 '불인증' 선언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니키 헤일리 미 유엔주재 대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에 손을 대는 결정을 내린 데는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대사(45)의 역할이 컸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제외한 대부분 참모들이 이란 핵협정 수정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따라서 정권 초기의 논의과정에선 각료 대다수가 "판을 깨는 건 미국의 국익에 불리하다. 이란의 협정 준수 여부 결정을 '불인증'으로 하는 건 위험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따르는 분위기였다. 실제 이달 초에도 트럼프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장관의 촉구에 따르는 모양새를 취하며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틸러슨의 온건론 내치고 헤일리의 강경론 손들어줘 #폴리티코, "차기 국무장관으로 헤일리 급부상" 전망

그러나 헤일리 대사는 일찍부터 물밑에서 트럼프에 '핵 합의 준수 불인증'을 압박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말에는 외교·안보 당국자 회의에서 "내가 이란 핵합의 불인증을 위한 기반을 다지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로부터 한달 후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를 방문, IAEA 관계자들까지 압박했다. 이란이 핵합의에서 약속한대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정말 잘 자제하고 있는 지 의심이 간다며 그 판정 기관인 IAEA를 몰아세운 것이다. 당시 틸러슨 국무장관은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헤일리를 견제했지만 트럼프는 헤일리의 손을 들어줬다. 폴리티코는 "이 과정에서 헤일리와 틸러슨 사이의 불화가 고조됐으며 헤일리는 (대통령의 신뢰도 면에서) 틸러슨을 앞설 기회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북한 및 이란 문제 등에 강경론을 펼치며 외곽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돕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북한 및 이란 문제 등에 강경론을 펼치며 외곽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돕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헤일리와 더불어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이번 트럼프의 대 이란 신정책 발표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혔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연설에서 "이란이 합의를 계속해서 위반하고 탄도미사일을 확산하는 등 테러세력을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난 언제라도(at any time) 합의를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제라도 합의를 취소할 수 있다"는 문구는 당초 없다 발표 전날인 12일 트럼프와 볼턴의 전화통화 이후 새롭게 들어갔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최근 계속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의견이 엇갈리고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왼쪽).

최근 계속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의견이 엇갈리고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왼쪽).

강경파인 헤일리와 볼턴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트럼프에게 "북한과의 대화에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면박을 당하며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틸러슨 국무장관은 더욱 찌그러진 모양새다. 폴리티코는 "헤일리는 차기 국무장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은 핵합의를 위반했다"며 (협정 준수) 불인증 판단을 내놓음으로써 향후 60일 이내에 이란 핵합의의 대가로 풀어줬던 대 이란 제재를 복원할 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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