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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말보다 못한 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3호 30면

소통 카페

무명초는 자르지 않았지만 출가를 세 번 했었다. 출가 선언을 한 필자를 두고 수상한 혐의가 횡횡했다. 대학에 자리 잡은 재수 좋은 젊은 교수가 왜 산사로 가려고 하는가. 말 못할 남녀상열지사나 새삼 드러난 가족사로부터 도피인가와 같은 추측을 포함했다. 요약하면 비정상적, 비현실적 생뚱맞은 행위라는 것이었다. 1990년대 우리나라 삼보사찰에서 오늘날 템플스테이를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사찰에서 며칠 스님의 생활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이 지금과는 다르게 생소한 시절이었다. 참가 경쟁률은 매우 높고 입학사정은 엄격했었다. 좀 슬프게 지원서를 쓴 전략으로 겨우 통과했을 것이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알리고 주장하고 논쟁해야 한다는 서양의 교육과는 다르게 묵언이 출가 3박 4일의 생활에서 최상위 포식자였다. 귀향하는 출소(?)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는 삼천배나 일주문서 대웅전까지 가는 삼보일배에 앞서 참가자들이 간략히 자기 소개와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빼고는 묵언의 지배하에 있었다.

참선, 강의, 보행, 발우 공양, 취침 등과 함께한 묵언은 오묘한 콘텐트였다. 소리 없는 말, 묵언에도 갖가지 소리가 있었다. 계곡을 흘러 어디론가 떠나며 청천벽력의 아우성을 질러 잠들지 못하게 하던 물의 소리. 15명이 넘는 인원이 엄격한 절차에 따라 공양을 마치고 각자 밥그릇을 씻은 물을 거둔 천수통에 미세한 찌꺼기라도 있으면 함께 나누어 마셔야 했던 서스펜스의 소리, 좌선에서 저리고 마비가 오는 팔다리와 육신의 뒤척이는 소리, 문득 문득 행복한 느낌을 안겨 주던 마음의 소리….

하산 후에도 출가의 체험은 싱싱했다. 용맹전진의 삼천배를 목탁과 염불로 인도한 스님들은 자세 한 곳 흩뜨리지 않았다. 땀으로 익사 지경에 이른 우리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듯했다. 삼천배나 삼보일배의 대오에서 이탈하지는 않았지만 빌빌거리는 우리 중생들을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어떤 시비나 조롱도 하지 않았다. 소리 없는 말의 위력과 사려 없이 함부로 쓰던 말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끼는 경험이 있었다. 묵언 속에서도 모든 것이 소통하고 공존했다.

소리 없는 묵언이 이럴진대, 정치인들의 소리 큰 말은 상대를 깔아뭉개고 부정하는 혐오표현(hate expression) 일색이다. 대한민국을 속국 대하듯 하는 강대국들과 핵으로 생명과 안보위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북한 정권의 광기에 국민의 속은 바짝 타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이분법적 말은 지혜로운 대처보다는 갈등을 조장하고 내 편과 네 편의 분열사회를 구조화할 뿐이다. 양자택일(all or nothing)의 말 앞에 소통과 공감은 물론 참여 또한 설 곳이 없는 것이다.

죽은 부처는 관 밖으로 자신의 ‘발’을 내밀어 보여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주었다. 소리 없는 말보다 못한 정치인들의 말 때문에 걱정이 쌓여 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부처님의 발 같은 말이 그립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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